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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의원 비서는 늘리고 예산은 졸속 심의하는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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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정부가 편성한 첫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이 임박했지만 올해도 졸속 심사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 같다. 예산 사업 2300여 건 가운데 지난주까지 감액 심사가 이뤄진 것은 659건뿐이다. 사업 규모가 25조원에 달하는 172건은 여야가 합의를 못하고 계수조정소위에 넘겼다. 이렇게 되면 시간에 쫓긴 여야가 주고받기식 담합으로 예산 심의를 끝낼 가능성이 크다.

국정 전체보다 지역구 예산부터 챙기는 의원들의 구태도 여전했다. 이미 진행된 국회 상임위 심사에서 지역 민심을 사기 위한 선심 경쟁이 치열했다. 국회 국토교통위는 17조7000억원의 정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20조838억원으로 2조3679억원 늘려놨다. 예산 심의가 막바지로 갈수록 쪽지 예산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여야가 예산 심사 과정에서 슬그머니 끼워 넣는 쪽지 예산은 대부분 선심성 사업이고 사업 타당성 검토가 원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올 예산심의에서 쪽지 예산이 더 극성을 부릴 것 같아 걱정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쪽지 예산을 부정청탁으로 해석해 ‘김영란법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비공개인 소위 심사 과정에서 쪽지 예산이 사라졌다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김영란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는 의원 얘기도 들은 바 없다.

내년 예산안에는 최저임금 재정 지원과 공무원 증원 등 쟁점 사업이 많다. 여야가 합의하지 못해도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이번 주말에는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이걸 핑계로 쪽지 예산이나 챙기고 예산 심의를 졸속으로 넘겨버리는 것은 국회의 심각한 직무유기다. “국민 눈치 보지 말자”며 자신들의 8급 비서를 추가로 채용하는 법을 통과시킨 국회의 후안무치를 생각하면 예산 좀 제대로 챙기라는 지적 역시 ‘소 귀에 경 읽기’가 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