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청원은 민정수석보다 권익위가 처리하는 게 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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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청와대가 국민청원이란 명분으로 시도 때도 없이 국정의 책임자처럼 행세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 대통령 중심제 에서 대통령의 보좌진이 국정에 개입·조정하는 행위 자체를 시비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쳐 초과권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 점이 문제다.

엊그제 조국 민정수석은 ‘청와대에 들어온 국민청원이 20만 건을 넘는 사안은 담당 수석 등이 답변한다’는 내부 규칙을 내세워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심판이 진행 중인 ‘낙태죄 폐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내년에 임신중절 실태를 조사하겠다는 정책 계획을 밝히고 현행 법제가 불합리하다는 평가까지 내렸다.

조 수석은 요즘 대통령의 비서가 취해야 할 원칙에서 자주 벗어나는 느낌이다. 성공한 대통령 참모들의 공통점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비서는 입이 없다’는 정치 격언도 있다. 그는 얼마 전에도 민정수석으로선 아마 사상 처음으로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 나타나 당·정·청 모임의 스폿라이트를 받으면서 ‘공수처 법안’을 역설했다.

한국의 헌법과 정부조직법 체계는 모든 국정 행위를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장관에 준하는 국무위원 포함)만 하게 돼 있다. 정책에 대한 서명권도 오직 이들에게만 부여된다. 우리가 장관의 영어 명칭을 ‘대통령 비서’라는 뜻을 지닌 미국식 세크러테리(Secretary)를 배척하고, ‘전권을 장악해 책임지고 행사한다’는 뜻의 미니스트리(Ministry)를 채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청원 문제만 해도 청와대가 청원을 받는 건 좋은데 답변은 정부조직법상 그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민권익위나 관계 부처로 하여금 발표하게 하는 것이 정도다. 부처에 권한배분은 하지 않고 모든 사안을 움켜쥐려는 권력 속성은 정권이 바뀌어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직원은 어느새 900명을 넘었다. 미국 백악관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