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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에 대처하는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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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혜민 기자 중앙일보 팀장
박혜민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박혜민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산업부장

마음 졸이던 수능이 무사히 끝났다. 무사히 끝나서 정말 다행이다. 수험생들에게는 길고 긴 지난 일주일이었을 거다. 이제야 긴 터널이 끝나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여기가 끝이 아니라며 일주일 더 걸어가야 했으니 얼마나 두렵고 암담했을까.

수능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치러야 하는 성인식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 마치 곰이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으며 100일을 버티고 사람이 됐다는 단군신화처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고3’이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수능이라는 성인식을 치러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줄인 말이 수능이다. 1993년 이전에는 대학입학학력고사, 즉 학력고사였다. 그 전에는 예비고사·연합고사 등으로 불렸다. 이름과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입시를 앞둔 고3으로 사는 건 언제나 비슷했다. 하고 싶은 것들은 뒤로 미루고 놀고 싶은 마음도 억눌러야 한다. 그러면서 고강도의 정답 맞히기 연습에 매진한다. 이해가 안 되면 외워서라도 정답을 맞혀야 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폭압적이고 불합리한 방식의 성인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더 발전된 형태가 개발되지 않았다. 사정은 점점 더 나빠지는 것만 같다. 내년에 고3이 되는 아들 덕분에 복잡하기 짝이 없는 ‘등급 컷’이니 ‘수능 최저’니 하는 수능 특수용어를 조금씩 알게 되는데, 20여 년 전 내가 치렀던 대학입시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개선된 점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먼 옛날 소년들은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들돌을 들어올리는 의식을 통해 성인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들돌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성인이 됐음을 축하하는 잔치를 벌였다. 오늘날 수능 시험장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능 날엔 전 국민이 수능 결과에 귀 기울이고 부모들은 시험장 앞에 기도하며 서 있다가 수능을 끝내고 나오는 아이들을 격려한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2030년이면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하는 학자도 있지만 여전히 대학은 사회로 나가는 관문이고, 입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고 긴 인생에서 수능 성적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성인이 되는 첫 번째 통과의례일 뿐이다.

이제 고3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게 될 아들이 무사히 건강하게 1년을 버텨내기를 기도한다. 견디기 힘든 시련을 참아내고 무사히 수능을 치른 모든 수험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박혜민 코리아중앙데일리·경제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