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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화가 이상태 "텅빔 속에 충만을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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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도' 17-17. 73x61cm. 혼합지, 먹, 아크릴.

'심사도' 17-17. 73x61cm. 혼합지, 먹, 아크릴.

불교 그림에 ‘심우도’(尋牛圖)가 있다. 사찰 법당 외벽에 주로 그렸다. 우리 안의 본성을 알아가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했다.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였던 만해(萬海) 한용운이 만년을 보냈던 서울 성북동의 집 이름도 심우장(尋牛莊)이었다.

6번째 개인전 '심사도' 29일부터 열려 #정적과 폭풍, 그림은 나를 찾아가는 일 #전통 한국화 현대적으로 변용한 연작

 시를 쓰든,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빚든, 예술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탐색하는 일이다. 문인화가 여촌(如村) 이상태(56)의 6번째 개인전의 주제는 ‘심사도’(尋思圖)다. 화면 안에서 내 생각을, 내 본체를 찾아가자는 뜻이다. 작가는 4년 전 화업(畵業)을 수행에 빗댄 ‘심아도’(尋我圖) 연작을 선보이기도 했다.

심사도 17-13. 65x53cm. 캔버스, 유화.

심사도 17-13. 65x53cm. 캔버스, 유화.

 이번 ‘심사도’ 연작도 크게 보면 ‘심아도’와 맥을 같이한다. 주로 동양 전통 재료인 한지와 먹, 그리고 서양 재료인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고요 속의 폭풍’ '텅빔 속의 충만'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허공에 날리는 매화 꽃잎에서 우주의 힘찬 기운이 느껴지고, 고요한 다완(茶碗·찻사발)과 산사(山寺)를 휘감는 붉고 푸른 기운에서 더 높은 예술로 다가가려는 작가의 열정이 감지된다. 거친 풍파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마치 오래된 고분벽화를 보는 듯 독특한 질감이 두드러진 소나무도 보인다.

심아도 17-3. 90x65cm. 캔버스, 먹, 아크릴.

심아도 17-3. 90x65cm. 캔버스, 먹, 아크릴.

 여촌은 이번 전시에서 ‘괴다’라는 단어를 주목했다. ‘괴다’는 고려가요 ‘정과정(鄭瓜亭)’에 나오는 말로, 사랑을 뜻한다. 그는 “지난해 이 단어를 들었을 때 그 뜻이 너무 깊고 오묘하여 할 말을 잊었다. 그림은 결국 인간과 사물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한다”고 했다.

 여촌은 전남 진도 태생이다. 남도 문인화의 거목인 금봉(金峰) 박행보 선생을 사사했다. 1985년 제4회 미술대전 서예 부분에 ‘묵매도’를 출품해 미술대전 처음으로 서예가 아닌 사군자가 대상을 받는 영예를 차지했다. 이후 전통 사군자의 현대적 변용에 주력해왔다. 지난해에는 문화예술나눔과 프랑스 정부 지원으로  프랑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전시는 오는 29일부터 12월 5월까지 서울 인사동 G&J광주·전남갤러리에서 열린다. ‘심사도’ 연작 30여 점이 나온다. 02-2223-2545~6.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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