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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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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임미진 산업부 기자

임미진 산업부 기자

20대 후반의 K는 퇴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직장은 대기업 계열 무역회사. 지난해 초 이곳에 입사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심했다. 명문대 중문학과에 토익 980점, 유창한 중국어. 그런데도 취직이 쉽지 않았다. 1년 동안 150개의 입사 원서를 썼고 30번의 필기시험을 쳤으며 10번의 면접을 봤다.

간신히 들어간 첫 직장. 하지만 K는 입사 한 달도 되지 않아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000만원만 모으고 나가자고 생각했어요. 그 돈이면 1년 정도는 돈 안 벌고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조만간 통장엔 1000만원이 찼다.

그는 무엇을 버티지 못했던 걸까.

“대기업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조직이에요. 너무 비합리적인 일도 그냥 받아들이라고 강요해요.”

고객을 만날 일이 없는데도, 내규는 자율 복장인데도, 신입사원이어서 3개월 동안 검정 정장을 입었다. 여직원이라서 매일 아침 탕비실을 정리했고, 회사 문화라며 “아침 7시 반에 출근해, 한 시간 동안 공부를 해라”고 강요했다.

그는 중국어 능력을 기반으로 해외 업무에 배치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배치된 곳은 IT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부서였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라 제 역량을 발휘하기가 어려웠어요. 거래 회사의 IT 전문가들을 상대하기도 버거웠고요. 임원에게 ‘이 자리는 제가 적임이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나도 1년짜리 계약직이라 뭘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시더군요.”

K의 속마음을 듣고 혀를 차는 어른도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이 어디 마음대로 되더냐고, 싫은 것도 견디며 일해야 하지 않느냐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젊은 세대다. 생계를 위해 자신의 꿈도 생각도 포기하며 살았던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퇴사 콘텐트가 넘쳐나는 것은 그래서다. 퇴사를 가르치는 학교가 생겼고, 퇴사를 제목에 올린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당분간 모아둔 돈을 쓰며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거예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20대 후반에 고민하는 것이 늦었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이들은 평생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지지 않고 산다. 젊은 세대가 지금이라도 고민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이들의 고민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임미진 산업부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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