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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새마을운동 품어야 반문 돌아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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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한국인만 모르는 세 가지’라는 진담 같은 농담이 있다. 한국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중국·일본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한국이 얼마나 잘사는지 우리만 모른다는 거다.

해외에선 호평 받지만 국내에선 몰라줘 #새마을운동 빠진 ‘아프리카 박정희’ 여럿

이렇듯 해외에선 부러움의 대상인데 이 땅에서만 몰라주는 것 중 하나가 새마을운동이다. 아프리카·동남아 정상 중에는 새마을운동에 홀딱 빠진 이가 많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박정희’로 불리는 이들도 여럿이다. 대표적인 게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으로 집무실에 박정희 전 대통령 저서를 두고 틈틈이 읽는다. 이런 열성 덕에 우간다에는 30여 개의 새마을운동 시범마을과 지도자 연수원까지 세워졌다. 나아가 그는 박정희식 경제개발 모델을 통째로 들여와 추진 중이다.

르완다의 폴 카가메 대통령도 ‘아프리카의 박정희’로 통한다. 서슴없이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와 박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밝히는 카가메는 새마을운동 전도사다. 그는 2015년 유엔 회의에 참석해 “지난 10년간 이뤄진 르완다의 고도성장은 새마을운동을 받아들인 덕분”이라고 공개 발언했다. 1990년대까지 인종학살로 악명 높던 르완다는 지난 10년간 평균 8% 성장을 기록하는 등 아프리카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가 됐다.

이렇듯 새마을운동에 매진 중인 나라는 41개국. ‘새마을’이라는 한글이 선명한 초록 깃발 아래 외국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광경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분당 새마을운동중앙회를 찾는 외국 정상과 장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해외의 긍정적 평가에도 이 땅의 평가는 박하다. 박 전 대통령의 여러 모습 중 독재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탓일 게다. 자연히 반독재 정서가 강한 이번 정권에서는 찬밥이 될 신세였다. 실제로 당국은 새마을운동 관련 예산을 3분의 1이나 깎으려다 국회의원 등의 이견으로 실패했다고 한다.

이렇듯 새마을운동이 위축될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필리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 등 몇몇 정상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새마을 운동을 도와줘 고맙다”고 말한 것이다.

생각지 못한 감사의 말에 문 대통령은 뒤늦게 새마을운동의 진가를 깨달은 모양이다. 그는 곧 “이전 정부 추진 사업도 성과가 있으면 지속적으로 추진할 여건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자신의 판단이 아닌, 제3자의 평가로 깨달았을지언정 새마을운동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게 된 건 다행이다.

지난 6월 독일 통일의 아버지 헬무트 콜 전 총리가 타계하자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동독과의 교류를 시작한 동방정책은 정권이 바뀌면서도 기조가 잘 유지돼 콜 총리에 이르러 통일을 이끌었다.…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고.

옳은 평가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대목은 콜 총리가 취임 전엔 동방정책을 비난했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반대했던 옛 정권의 정책일망정 취임 후 옳다고 판단되면 기꺼이 끌어안는 유연성에 콜 총리의 위대함이 있다. 전 정권의 아이디어란 이유로 아깝게 내버려진 좋은 정책이 한둘이 아니다.

현 정권의 잠룡인 안희정 충남지사도 지난 1월 대선 경선 때 이렇게 주장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새 나라가 된 것처럼 간판을 모두 바꾸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며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녹색성장’과 ‘창조경제’를 계승해야 한다”고.

문 대통령이 묻어버리기엔 아까운 전 정권의 정책을 품는 모습을 보이면 반대 세력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다. 그게 바로 포용 정치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