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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철 지난 주사파 논란 이젠 끝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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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그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기 전까지 내가 임종석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은 지극히 단편적이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으로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수감됐었다는 정도다. 전대협은 김일성 주체사상(主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주한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통일 같은 북한의 노선을 지지했다. 그러니 세간에서 전대협 의장이었던 임종석을 ‘주사파 운동권’ 출신으로 분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이런 세간의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 잘못을 바로잡을 책임은 임종석 본인에게 있다. 그게 공직자요 정치인의 숙명이다.

야당 색깔론 공세 빌미 안 주게 #임종석이 직접 나서 해명해야

그런 점에서 6일 국정감사장에서 ‘주사파 논쟁’이 벌어졌을 때, 임종석이 격렬하게 반응한 것은 뜻밖이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날 “주사파와 전대협이 장악한 청와대의 면면을 봤다”며 색깔론을 들고나왔다. 야당의 색깔론 공세는 어찌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임종석은 “그게 질의냐”며 거칠게 반발했다. “5·6공화국 때 정치군인들이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의원님은 어떻게 살았는지 보지는 않았다”며 되묻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좋은 기회를 임종석은 왜 그렇게 흘려보냈을까. “나는 주사파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 대한민국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일성 사상을 추종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자신의 입으로, 딱 한마디만 했으면 그를 둘러싼 모든 논란은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임종석의 지난 행적을 수소문해 봤다. 그는 국회의원이던 2004년 “국가보안법은 위헌적이며 반(反)민주악법의 상징이기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9월에는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에 항의하는 서한에 서명하기도 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 통과는 탈북자의 급속한 증가와 북한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5억 달러를 불법 송금해 문제가 됐던 대북 송금 특검수사도 반대했다. 2005년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만들어 북한 영상·저작물을 사용했다며 KBS·MBC·SBS 등 방송사와 국내 출판사로부터 북한 대신 저작권료를 거둬 북에 전달했다. 이게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됐다. 13년간 거둔 돈이 22억5206만원이다.

그럼에도 임종석을 아는 많은 이들은 “주사파나 종북이란 딱지를 붙이기엔 결이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한다. 임종석 스스로도 지인들에게 “주사파였던 적이 없는데 무슨 전향 선언이냐”고 반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나는 주사파였던 적이 없다” 한마디만 하면 된다. 그러지 않으니 대북 정책과 관련해 잡음이 날 때마다 이 정부의 안보관을 의심하게 되는 것 아닌가.

지난 9월 대통령이 국내에 없을 때 문정인 대통령 특보를 비판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공개적으로 질책한 것도 임종석이요, 며칠 전 북한 병사 탈북 때 “비조준 경고사격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대통령의 ‘문제 제기’를 다음날 단순한 ‘의견 제시’로 뒤집은 것도 임종석의 비서실이다. 그럴 때마다 국민은 헷갈리고 불안하다. 오죽하면 요즘 만나는 기업인마다 “대통령이 주사파에 포위된 것 아닌가. 과연 (이 정부가) 시장경제는 하는 건가, 자본주의 체제는 맞나”라며 잔뜩 의구심을 털어놓겠나.

대통령 주변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뀌는 걸 바로 지난 정권에서 지켜본 국민이다. 그런 국민이 임종석의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