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청은 받아놓고…진통하는 공천 민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민정당이 국회의원 조기공천 신청을 받아놓고 내막적으로 매우 고민에 빠져 있다.
공천신청의 조기접수 그 자체가 정권교체를 앞두고 「신구권련」간에 일어난 일종의 알력의 측면을 떠고 있는데다 총선 시기·선거구 조정등 공천에 앞서 결정돼야할 중요사항이 모조리 여야협상과 직결돼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또 선거법협상의 향방이 묘연한 가운데 1구1∼4인제 당안에 따라 공천신청을 접수한 결과 선량지망생들은 공천때마다 으레 있게 마련인 정도를 훨씬 넘는 과열경쟁상을 보여 중앙당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민정당은 신청자들에게 지역활동을 자제하라는 공개경고를 발표해야했을 만큼 공조직 동요등의 부작용이 전국적 현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하고있다.
심지어 중앙당마저 공천을 신청한 일부 당료들이 지역 활동으로 자리를 떠 해당 당무수행에 상당한 지장까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민정당의 2월 총선거 및 1구1∼4인제 안은 각종 당내 절차를 거쳐 당론이 됐지만 엄밀히 따지면 현 집권층의 아이디어였다고 많은 의원들은 보고있다.
지난해 가을 개헌협상이 타결된 이후 촉박한 대통령선거로 국회의원선거법 협상이 안 될게 뻔한데도 정부의 어느 쪽에서 1구1∼4인제안을 집요하게 흘리며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는 그 구도에 맞춰 「공천 내락자」를 양산하는 기미를 보여온게 사실이다. 그리고 대통령선거 직후부터 2월 총선거 강행의지를 거듭 다짐하면서 이를 당론화하고 이어 공천신청의 조기접수를 하게됐다는 분석이다. 총선시기를 현정부 임기내로 잡느냐, 새 정부 출범후로 잡느냐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공천에 대한 영향력 행사와 직결된다는 인식때문에 일찍부터 당측 참모들은 이런 구도에 반발하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노태우 대통령당선자측은 새 정부, 새 국회 원칙에는 찬동하나야당이 반대하는한 2월 총선거는 불가능한게 아니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개진해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당측 입장을 밝혔다.
당측은 또 「공천 내락자」 양산세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보인게 사실이며 현정부에 대한 대접을 고려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차기 정권에 「그림자」를 남기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공천신청의 조기공개 접수는 한쪽이 조기에 의미를 두었다면 다른 쪽은 공개심사에 의미를 뒀다고 분석할 수 있다. 공개심사를 통해 「내락자」들중 새 시대 정치에 맞지 않을 인사들을 자연스럽게 걸러낸다는 복안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권내에는 공천과 총선시기등을 두고 알게 모르게 신경전이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선거법협상의 결과에 의해 나타날 공천결과에 따라서는 민정당내에 5공화국과 새체제 사이에 신구파라는 파벌이 형성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또 조기공천 신청접수는 선거법협상에 임하는 민정당의 입장을 어렵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1인구인 1구1∼4인제안의 구도에서 공천신청을 받았기 때문에 선거구 수가대폭 줄어들 중선거구제로서는 이들을 수용할 수 없게돼 당의 운신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측이 소선거구제 당론을 철회했음에도 불구, 순수한 소선거구제안으로 밀고 가도록 압력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어 18일부터 시작되는 선거법협상의 귀추가 한층 주목되고 있다.
○…2백11개 선거구를 전제로 신청 받은 선량지망생 1천4백31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천심사 착수에 앞서 유리한 지지 기반 과시를 위해 갖가지 형태로 지역에서 맹렬히 활동, 도처에서 공조직과의 마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당이 실사에 착수하기 전에 지역여론을 자기 폭에 유리하게 잡는다는 목표아래 신청자들은 대체로 위세를 과시하거나 경쟁자에 대한 모략과 흑색선전, 상대방 조직 잠식 또는 지지 연판장 돌리기등의 활동을 펴고있는데 이번에는 분구를 전제로 공식공천접수를 받았기 때문에 그 숫자나 열기가 한층 치열하다는게 중론이다.
위세과시형은 주로 전·현직고위관리나 신구 권력핵심과 가까운 연고관계를 내세운 사람들로서 『공천장을 받는 형식만 남았다』고 지역에서 공언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경남고성의 경우 전· 현직 장관 3명이 나름의 연을 내세우고 있고 경북 모 지역에서는 모 전장관이 『3선만 하면 국무총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했다가 좋지 않은 반응에 부딪쳤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 갑자기 공직을 사퇴한 모씨는 지역에서 『현직 및 차기대통령 모두에게서 내락을 받았다』고 광고하기도 했다는 것.
유명인사들이 이 같은 자기과시로 지역민을 파고들자 권력측과 연줄이 약한 경쟁자들 중재력있는 인사들은 『대량의 물량공세로 지역을 융단 폭격했다』 (모 재정위원 신청자) 고 자랑할 정도로 벌써부터 물량공세를 취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 충남 모 지역에 신청한 한 무명 인사는 해당시장에게 노 당선자의 이름이 박힌 봉투에 자기 돈을 넣어 전하면서 『노 당선자가 나를 통해 전해주라고 하더라』고 말해 마치 자신이 공천 내락을 받은 양 꾸미기도 했다는 후문.
충남 모 지역구의 한 신진인사는 대학생을 고용, 3만2천여명의 지지서명을 첨부해 공천신청을 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지지결의대회·지지 연판장 돌리기가 성행하고 있다.
신청자들이 유력 당원이나 기간요원을 매수하는 사대가 빈발, 유력 당원 스카우트 파동이 일어나는 소동도 지역에서는 심심치 않다는게 중앙당의 분석이다.
게다가 신청자들은 경쟁자의 무능·여자문제등 전력과 신상에 관한 흑색선전은 물론 심지어는 조상까지 들먹이며 중상모략하는 유인물을 뿌리고, 특히 현역지구당위원장에게는 『권력층과 친척·인척간이어서 탈락한다더라』 (경북상주), 『무능하고 의정활동이 시원찮아 탈락한다더라』,『강경파여서 배제된다더라』는 등의 비방을 유포하고 있다고 한다.
신청자들은 대개 사무실을 개설해 활동중이며 신경지역에 연고를 이용, 수백명의 ,청년들을 전입시킨 일이 빌어졌는가하면 (모 당료), 「○○○후원회」를 조직하고 『대통령선거에 지지해 감사합니다 ○○○』라는 대형 현수막이나 벽보를 수십, 수백장씩 붙이는 것은 일반적 형태.
이춘구 전사무총강의 충주지구당사 바로 앞에 모 신청자의 사무실이 개설되자 충주에서는 이전총장이 고향인 제천을 선택할까봐 충주지구당위원장 추대위가 결성되기도 했다고 한다.
한 선거구가 복수 시·군·구로 되어 있는 곳에선 현역의원이 안나오는 지역에서 『그렇다면 당을 떠나겠다』는 당원들이 속출해 지역구위원장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민정당 공조직도 지난 7년간 위원장 중심의 사조직 비슷하게 됐다는 풀이인데, 위원장들은 『선거제도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판에 채택이 불확실한 당 안에 따라 성급하게 공천신청을 받아 공조직만 흔들리게 됐다』고 비판한다.
많은 의원들은 공천을 어떻게 하든 탈락자들은 등을 돌리게 되어 있고 지금은 또 예전과 달리 통제력이 약해 탈락자중 상당수가 출마할 것이며 따라서 조기공천신청으로 득보다 공조직만 헝클어뜨린 실만 초래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공개신청을 받았기 때문에 공천이 객관성을 잃을 경우 당내 갈등은 이래저래 필연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이수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