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일인 6명 북한에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동경=최철주 특파원】 김현희가 15일 폭로한 북한에서의 스파이 교육내용이 10여년전 일본에서 연쇄증발한 일본인 남녀 6명의 연쇄실종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주요 실마리를 제공, 일본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이 없어진 이들 젊은 남녀의 가족들은 김의 폭로사실로 보아 그들의 자녀들이 평양으로 납치된 것은 명백하다고 주장, 『북한은 내 아들 딸을 돌려달라』고 탄원하고 나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 공안당국이 김현희의 기자회견내용에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일본해안에서 납치된 일본여성으로부터 일본인으로 가장하기 위한 교육을 평양에서 받았으며 그 여자의 이름은 「은혜」였다』는 대목이었다.
일본경찰은 지난 78년 동해안 연안인 후쿠이(복정)현 등 3개 지점의 해변가를 산책중이었던 3쌍의 남녀가 서로 다른 시기에 잇달아 증발되었으며 지금까지 이들의 행적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획득하지 못해 사실상 수사를 중단한 상태였다.
이들의 실종은 ①북한공작원들이 자주 출몰한 지점에서 발생했으며 ②장소가 인적이 드문 저녁시간의 해변가였고 ③사건발생 이후 지금까지 모두 똑같이 단서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북한공작원에 의한 납치설이 유력시되었으며 공안당국은 『일본인들의 호적이나 여권을 취득해 일본인으로 위장, 스파이활동을 펴기 위해 북한이 납치한 것』으로 단정해왔다.
김현희는 북한공작활동 교육내용을 폭로하면서 그에게 일본인생활과 풍습을 가르쳐준 일본인여성의 나이가 31세로 밝혔으며 이는 지난 78년에 납치된 6명의 일본인 남녀중 여자 3명의 현재나이와 비슷하고 특히 이중 1명의 이름에는 「혜」자를 붙이고 있어 혹시 그가 김현희에게 일본어교육을 담당한 「은혜」가 아닐까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연쇄 증발된 3명의 일인여성 가운데 1명인 「하마모토」양 (준본부귀지·의류상 점원)은 당시 23세때인 78년7월7일 하오8시50분 약혼자와 함께 후쿠이(복정)현의 아오이(청정)해변을 거닐다가 2명 모두 행방불명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이 해변에서 「하마모토」의 약혼자가 몰았던 반트럭만이 발견되었다. 「하마모토」양의 가족은 이들이 4개월 후에 결혼식을 거행할 예정이었으며 가출하거나 자살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들어 북한공작원에 의한 납치를 강력히 주장해왔다.
이 사건이 있은 후 20여일 후인 7월31일에는 니이가타(신석)현 가시와자키 (백기)시의 「오쿠도」 (오토우목자·당시 22세·미용사)양이 해변에 있는 시립도서관 앞에서 남자친구 「하스이케」군과 만나기 위해 나갔다가 종적이 끊겼다. 도서관 앞에는 「하스이케」군이 타던 자전거만이 남아있었다.
한달 후인 동년 8월12일에는 가고시마 (녹아도) 현의 해안에서 「마쓰모토」양 (당시24세)이 역시 데이트하러 해안에 나갔다가 남자친구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이같은 연쇄 미스터리는 북한공작원이 대일 침투사건이 발각될 때마다 재수사의 초점이 됐으나 이번처럼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경시청 공안부 등 공안당국이 전후에 적발한 북한스파이 사건은 85년3월의 「미야모토」 가 관련된 「니시아라이」 (서신정) 사건때까지 모두 43건. 북한공작원의 상당수가 납치된 일본인을 쇄뇌해 그들로부터 일본에 대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경찰은 북한공작원에 의한 일본인 납치음모의 사실 여부를 캐기 위해 빠르면 이번 주에 수사관을 서울에 파견해 직접 김현희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한국정부의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일본은 동해안에서 증발된 3명이 일본인 여성의 사진과 각각 특징이 있는 자료 등을 지참, 「은혜」의 정체파악에 부심하고 있다.
만약 김현희의 일본어교사 (은혜)가 납치된 일본인으로 밝혀질 경우 일본정부는 북한에 대해 자국민송환 요구 및 주권침해에 관한 강력한 항의를 제기할 것으로 보여 일본의 대북한정책도 크게 경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