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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단 애들이…" 내외국인 한동대 학생의 지진 극복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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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의 한동대는 15일 발생한 지진의 직격탄을 맞았다. 진앙에서 1㎞밖에 안 떨어져 있어 ‘성한 건물’을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타격이 컸다.19일까지로 정했던 휴교 기간은 다음달 3일까지로 연장됐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났다.

18일 오후 포항 북구 항구초등학교에 대피 중인 선린애육원 어린이 80여명들과 레크리에이션을 진행 중인 한동대 학생 율리아(25). [사진 한동대]

18일 오후 포항 북구 항구초등학교에 대피 중인 선린애육원 어린이 80여명들과 레크리에이션을 진행 중인 한동대 학생 율리아(25). [사진 한동대]

그런데 떠날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국내에 연고가 없는 외국인 유학생들이다. 이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봉사에 나섰다.

외국인 유학생들, 지진 대피 중인 보육원 어린이들 찾아 #교내에 남은 학생·교수·교직원 "학교 다시 세워야 할 때" #한동대 "다음달 3일 정상수업까지 조속한 복구작업"

“지진 때문에 학교를 쉬고 있지만, 우리라도 나서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어요.” 한동대에 유학온 러시아 학생 율리아(25)의 말이다. 그는 주말인 18일 포항시 북구의 한 초등학교로 갔다. 이곳엔 인근 보육원에서 온 원아 등 어린이 다수가 대피해 있다. 율리아 등 외국인 유학생 20여 명은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시간을 보냈다.

교실 한 쪽에 커다란 도화지를 펴놓고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는 유학생도 있었다. 귤과 음료수, 과자들도 수북했다.

한동대 외국인 유학생들이 봉사활동에 앞서 처음 만난 보육원 어린이들을 환영하고 있다. [사진 한동대]

한동대 외국인 유학생들이 봉사활동에 앞서 처음 만난 보육원 어린이들을 환영하고 있다. [사진 한동대]

유학생 대부분은 난생 처음 지진을 경험했다고 한다. 지진 당시 기숙사 옷장과 책장이 부서졌고, 교내 커피숍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처지가 됐다.

네덜란드에서 온 윌리엄(25)은 “기숙사 5곳 중에 외국인 기숙사만 그나마 피해를 덜 입어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지품을 정리하고 주변을 추스른 이들은 곧장 이웃을 위해 팔을 걷었다. 율리아는 “외국인이라서 갈 곳도 없지만, 우리보다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이 더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한동대 외국인 유학생들이 봉사활동에서 전달할 생필품과 간식들을 옮기고 있다. [사진 한동대]

한동대 외국인 유학생들이 봉사활동에서 전달할 생필품과 간식들을 옮기고 있다. [사진 한동대]

한국 학생들도 수습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같은 날 오후, 학생회관 2층에는 가방을 둘러멘 학생들이 책장이 넘어져 수십 권의 책이 널브러진 동아리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삼 형제가 모두 한동대에 다닌다는 ICT창업ㆍ전산정보학과 조선웅(26)씨는 “인터넷에서 학교를 위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지진을 계기로 학교가 더 소중하게 느껴져 곧바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학생회관 2층에서 조선웅(26)씨가 책장이 넘어지는 등 부서진 만화 동아리방을 살펴보고 있다. 최규진 기자

18일 오후 학생회관 2층에서 조선웅(26)씨가 책장이 넘어지는 등 부서진 만화 동아리방을 살펴보고 있다. 최규진 기자

주말 동안 학교로 돌아온 교수ㆍ교직원도 수습과 복구에 동참했다. 이날 한동대 소속 교수와 가족 20여 명은 손수레와 빗자루를 들고 강의실을 청소했다. 이틀째 청소 중이라는 에릭 엔로우 법학대학원장(46)은 “학생들 중에 아무도 다치지 않아 천만 다행이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와 총동문회는 다음주까지 피해복구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성금모금에도 나설 계획이다.

포항=최규진ㆍ송우영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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