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 가능한 최악의 지진 사태에 대비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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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호 02면

사설

역대 두 번째로 강력했던 경북 포항 지진 이후 우리는 천재지변 앞에서 벌거벗겨진 인간의 한계를 체감하고 있다. 포항 주민의 안온한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59만 명 수험생의 수능 시험을 일주일 연기시킨 지진이 다시 또 언제 닥칠지 예측하는 일은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인간의 능력 밖에 속한다. 지진 전문가들이 여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긴 하나 지금까지 드러난 건 한반도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정도일 뿐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최근 이번 포항 지진과 관련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단층대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무명의 단층대는 그동안 전문가들의 지표 조사에서도 드러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발생한 경주 지진을 계기로 올해부터 5년간 400여억원을 들여 동남부 지역의 활성단층을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땅속 상황을 소상하게 알 수 있는 지도 한 장 손에 없다.

이 때문에 지진 재발과 같은 위기 상황을 앞두고 대비책은 많지 않다. 지난해 경주 지진 때에 비해 빨라진 재난 문자 발송과 같은 조기경보 발령 속도 단축은 지진 관측 장비 확충에 따른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시민 안전에 필수적인 건축물의 내진 보강이나 활성단층 등에 관한 지질 연구는 앞으로도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사전 대비책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 상황을 받아들이고 최악의 사태를 상정한 뒤 여기에 맞춰 대비해야 한다. 다만 최악이라는 조건을 상정할 때 역시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전제를 떠나서는 안 된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규모 9.1의 동일본대지진 같은 대규모 지진이 곧 닥칠 것이므로 이에 대비해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노후화한 원전을 조기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또다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과 주장의 근거를 살펴보면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낸 지진 전문가인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는 경주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지진은 7.3이며, 규모 7.0 이상을 초과하는 경주 지진은 5900년 간격으로 재현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최근 내놨다. 경주 지역에선 역사적으로 사망자 100명이 발생한 지진이 통일신라시대인 779년 3월 발생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이다. 지진 발생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조사해 규명한 재현 간격을 감안한다면 대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다. 경주와 포항의 지진은 동일본대지진과 같이 지구의 판과 판이 만나는 경계에서 발생한 지진이 아니라 동일한 판 내부의 지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경주 지진에 대한 어떠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경주 지진이 일본 동북 지진의 진앙인 일본해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공사 재개 결정이 난 신고리 5·6호기가 규모 7.4까지 견디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도 감안할 때 이 정도 규모의 지진이 닥칠 수 있음을 예상하고 여기에 대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당장 지진으로 취약해진 경주·포항 등 동남권 일대의 다중이용시설의 안전부터 철저히 재점검해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차분히 대비해야 한다.

특히 오는 23일 치러지는 수능 시험에 대한 대비도 중요하다.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시험장은 폐쇄하고 수험생이 안전한 곳에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전국적으로 동시에 치러지는 수능은 이제 작은 규모의 지진으로도 충분히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 교육부는 수능 당일 지진이 발생하면 3단계(가·나·다)로 나눠 대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능 당일 수험생이 응시 중 미세한 진동이라도 감지한다면 이들에게 “가만히 있어라”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젠 아무도 없다. 교육부는 일부 지역, 일부 고사장의 응시 중단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준비하길 바란다. 포항 지진을 계기로 인간은 자연 앞에서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절감한다. 하지만 재난에 대처하려는 인간의 노력엔 어떠한 한계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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