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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평창올림픽 계기로 대화 분위기 조성 나서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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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호 03면

북·미 대화 실마리 찾기 바빠진 한·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왼쪽 둘째)이 지난 1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용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오른쪽 둘째)과 면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왼쪽 둘째)이 지난 1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용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오른쪽 둘째)과 면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이후 북·미 대화 재개의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한국과 중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先 비핵화 표명 vs 적대 정책 철회 #북·미 공방 속 미묘한 흐름 감지 #中도 특사 파견 등으로 중재 시동 #“北 입장 전환 없인 탐색전 그칠 것”

불씨는 북한이 제공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9월 15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 이후 60일 넘게 도발을 중단하고 있다. 여기에 과거와는 달리 중국과 러시아가 북핵 대화의 출발점으로 제시한 ‘쌍중단(雙中斷·freeze to freeze)’ 해법에 관심을 보이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을 뜻한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도발 중단에 앞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쌍중단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 북한의 전향적인 입장 전환이 가시화되지 않으면 또 한 번의 실패한 탐색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쌍중단’ 수용 여부 놓고 신경전

북·미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비핵화 의지를 밝힌 뒤 일정 기간 도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은 지난 17일 한·미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에서 재확인됐다.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 중단(도발 휴지기)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이날 제주도의 한 호텔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동한 뒤 “(도발 중단에 대해) 북한과 아무런 소통이 없었다”며 “(현재의 도발 중단을)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신호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도 “도발 중단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윤 대표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 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이 분명히 얘기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13일 보도한 인터뷰에서 현재 한·미 양국의 입장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강 장관은 “우리는 지난 두 달간 북한의 도발 중단을 봤다”며 “하지만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노선 전환’의 분명한 신호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기존의 ‘핵 포기 불가’ 입장에서 ‘비핵화 협상 테이블 복귀’로 노선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 같은 방안은 현재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주도하고 있으며 지난 25년간 북핵 협상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담은 안”이라며 “미국의 대화 조건은 일각의 평가와 달리 결코 낮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 내에서 제기된 ‘북한의 60일 도발 중단=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과거에 한때 검토됐다가 폐기된 안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쌍중단에 대한 명확한 거부 입장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아시아 순방 관련 대국민 보고에서 “과거에 지속적으로 실패했던 것들과 같은 소위 쌍중단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데 대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의견을 같이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의회의사당을 방문해 공화 당 소속 하원의원들과 회의를 마친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의회의사당을 방문해 공화 당 소속 하원의원들과 회의를 마친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쌍중단은 북·미 협상이 본격화되면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체제 협상을 병행 추진하자는 ‘쌍궤병행(雙軌竝行)’과 함께 시 주석이 제안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감한 북핵 해법이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선(先)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대성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대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미국이 합동군사훈련을 계속하는 한 미국과 협상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 “미국이 훈련 중단하면 뭘 할지 생각”

그런 가운데 미묘한 입장 변화 또한 감지되고 있다. 한 대사는 쌍중단 제안에 대해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전제하면서도 “미국이 먼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한다면 그 다음에 우리가 뭘 할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북한이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의 신호로 볼 수 있다는 역(逆)제안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부는 일단 현시점은 북한의 비핵화 대화 유도를 위해 제재와 압박에 집중할 때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동남아시아 3개국 순방을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쌍중단 수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현 상황에선)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며 “대화 여건이 조성돼야 대화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물밑에선 문재인 정부가 의욕을 보이는 이른바 ‘창의적인’ 대북 프로세스를 가동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유엔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내년 2월 열리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전후해 일체의 적대 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올림픽 기간 휴전 결의안은 1993년 이후 여름·겨울올림픽 주최국이 주도해 채택해 왔다. 정부도 이번 결의안 채택을 위해 홍보대사인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 등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와 관련해 한·미 외교가에서는 결의안 채택에는 한국 정부의 숨은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제23회 겨울올림픽과 제12회 겨울패럴림픽대회는 내년 2월 9~25일과 3월 9~18일에 열린다. 결의안은 개막 전 7일부터 폐막 후 7일까지를 휴전 기간으로 상정했다. 내년 2월 2일부터 3월 25일까지인 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간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 시기와 겹친다. 올해 키리졸브 연습은 3월 13~24일 실시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부가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명분 삼아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연기를 추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 소식통은 “미국의 강한 쌍중단 거부 입장을 우회해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명분으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하면 자연스럽게 쌍중단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문재인 정부 출범 초부터 제시해온 방안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와는 별도로 대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상황 관리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나 지난 13일 북한 군인 한 명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귀순 과정에서 불거진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의혹 등에 대해 ‘로 키’로 대응하려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中 “특사는 마술사 아냐, 당사자는 북·미”

중국도 시진핑 주석의 집권 2기를 맞아 조심스럽게 북·미 대화 중재를 위한 시동을 걸고 있다. 중국은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 보고 발언에도 불구하고 쌍중단 계속 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직후인 지난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현 상황에서 쌍중단이 가장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쌍중단은 현재의 긴장 국면을 완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국의 가장 시급한 안보 우려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7일엔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시 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집권 이후 전통적인 북·중 간의 당 대 당 채널을 가동하지 않았던 중국이 19차 당대회 이후 쑹 특사 파견을 계기로 북·중 관계 회복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이번 쑹 특사의 방북은 지난 8일 미·중 정상회담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당대회 결과 설명 외에도 북핵 해법을 두고 북·중 간에 모종의 협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부 당국자는 “당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며 내부 단속을 끝마친 시 주석이 이젠 한반도 위기 관리라는 당면한 외부 과제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일단 중국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8일 “쑹 특사는 마술사가 아니다. 한 차례 고위급 방문이 경색된 북핵 문제를 타파한다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쑹 특사의 방북에 과도한 기대를 갖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문제 해결의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이라며 북·미 양국이 보다 전향적으로 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특사 외교’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천영우(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과거에도 주요 북핵 국면에서 중국이 대북 특사를 파견했지만 북한의 행동을 제어한 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북한이 최근 중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동참을 강하게 비난해 왔다는 점에서 쑹 특사의 방북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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