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경국 총통 정치개혁, 새 시대 기반 닦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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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0년 간 대만의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로 향한 조심스런 변화를 가져온 장경국 총통의 죽음은 60여 년에 걸친 장씨 일가의 퇴진과 새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지난 78년 이후 대만을 지배해 온 장 총통은 오는 90년 제2기 임기만료와 함께 대만을 새 세대에 넘기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오면서 새 시대를 위한 기반을 닦아왔다.
『공산당과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곧 죽음과 같다』며 오로지 국민당에 의한 대륙수복을 꿈꿔왔던 장 총통이지만 그는 죽기 전 일련의 정치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구세대와 신세대를 이어주는 터전을 마련했다.
대만정부 및 의회의 고위직을 대부분 장악한 본토출신 원로정치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새 세대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지난해 38년 간 지속돼온 계엄령을 철폐하고 중공방문 및 야당활동을 허용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49년 간 국민당을 지배해온 부친 장개석 총통의 후광을 업고 78년 총통자리에 오른 고 장경국 총통은 지난 10년 간 주변국들과 외교단절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대만을 1인당 국민소득 5천 달러, 외환보유고 7백50억 달러의 탄탄한 경제강국으로 성장시켜 놓았다.
1910년 중공 절강성에서 출생한 그는 25년 소련 모스크바의 손문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35년 소련여성인「파냐」(장방량)와 결혼, 슬하에 3남1여가 있다.
그는 85년 총통 직을 자기가족에게 물려줄 의사가 없다고 밝혔었다.
그는 총통이 되기 전까지 국방부장·행정원 부원장 및 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정치기량을 닦아왔으며 총통이 된 후 서민적인 체취와 탁월한 지도력으로 국민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왔다. 지병인 당뇨병과 심장병으로 지난해 9월 이후 휠체어생활을 해온 그는 90년의 3선을 고사하면서 그의 죽음이후 대만의 앞날을 걱정해왔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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