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의 진밭골 그림편지] 풀꽃같은 미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산길을 오르다 이름 모를 풀꽃 하나 보았습니다. 위험하게도 밟힐 수 있는 길 한복판에 서서 천연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냥 지나치기 애석하여 곁에 가만히 앉아 모양새를 살폈습니다. 한 뼘 밖에 안 되는 작은 풀꽃이건만 오래된 큰 잎부터 여린 작은 잎까지 모두 갖추었습니다. 피고 지는 시간이 공존하며 자기 스스로 완결된 형상을 갖추었습니다. 작아도 하나로 통일된 소우주입니다.

천연스런 미소를 또 보았습니다. 호젓한 산길이 아닌 대구벌 U대회에서입니다. 북녘 동포 처녀들의 미소는 남녘 총각들 마음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55년 분단의 장벽을 넘어 온 동포의 미소입니다. 그 미소에 체제와 이념 같은 정치경제 논리를 애써 들이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김치가 맛있다지요. 시민들의 환영이 고맙다지요. 피투성이 동족상잔의 상처를 아물게 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비언어적 몸짓에 있습니다.

평화의 문화는 남북 청년들의 따듯한 미소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통일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평화를 통한 통일'이려는 몸짓으로 남북 청년들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김봉준 <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