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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통상마찰에 "태풍의 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쇠고기 수입문제가 한 미 통상마찰에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연초 정인용 부총리의 미국방문을 계기로 미국 측의 개방요구가 호텔용 고급쇠고기에서 일반 쇠고기 수입개방으로 확대·표면화되자 국내의 축산농가들이 거세게 반발, 요즘 과천 제2종합청사에는 전국으로부터 몰려온 축산농민들의 항의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고 농촌여론도 들끓고 있는 사태가 되었다.
쇠고기 수입문제로 통상 법 301조의 보복조치를 앞세운 미국의 밀어 붙이기식 개방압력과 우리 정부 외 안이한 대응자세, 그리고 민주화물결을 탄 축산농민들의 집단시위, 그 위에 총선을 앞둔 정국과 올림픽이라는 국제행사까지 얽히고 설켜 풀기 어려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솔직이 말해 쇠고기 수입이 관광호텔용 고급쇠고기에 국한된다면 그로 인한 경제적 파급영향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관광호텔에서 쓰이는 고급쇠고기는 연2천t 미만이고 이는 1천만달러정도 (도입가기준) 에 불과한 금액이다. 올해 올림픽특수가 있고 호텔수요가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등을 감안해도 1천5백만 달러 안팎이면 충분하다는 관계자들의 얘기다.
1천5백만 달러면 약1백20억 원. 국내 쇠고기시장은 연간 약1조원규모이므로 1%남짓한 비중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혹자 1백억 달러에 견주면 0·1%를 다소 넘는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정부가 작년6월 미국과의 협상에서 관광호텔용 고급쇠고기의 수입을 연말까지 트겠다고 언질을 주었던 것도 아마 그 경제적 파급영향이 대단치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정부총리가 미국을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부 내에는 미국과의 약속을 지켜 새해부터 관광호텔용 고급쇠고기에 한해 수입을 개방하자는 의견이 강력히 제기 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총리의 방미로 수입시기를 총선이후로 늦추는데 성공한 대신 일반쇠고기 수입개방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됨으로써 사태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쇠고기의 전면 수입개방은 그야말로 국내 축산농가를 황폐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농산물도 그렇지만 국산쇠고기의 가장 큰 약점은 가격경쟁력이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쇠고기 값은 평균 잡아 지육1kg이 도매로 1천7백 원 가량 한다.
최근 국내시세가 1kg에 4천1백원정도이니 미국 쇠고기 값의 2배가 넘는다.
미국에서 쇠고기를 사다가 관세 (20%)·방위세(2·5%)에 기타경비 (5∼6%) 를 다 물고 국내에서 판다고 쳐도 1kg에 2천2백∼2천3백 원이면 충분하다. 가격 경쟁력은 애시당초 논의조차하기 힘든 판국이다.
공급물량으로 봐도 국내의 소는 총2백50만 마리 수준인데 미국은 1억7백 만 마리(86년)에 달해 장기적·안정적으로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값이 가장 싼 호주의 경우 지육1kg에 1천1백 원으로 미국의 60%, 우리나라의 4분의1정도밖에 안된다. 시장을 개방하는 경우 호주 산 쇠고기도 들어온다고 봐야한다.
쇠고기수입을 전면 개방하는 경우 1백만 축산농가와 이들이 키우는 2백50만 마리의 소가 어찌될 것이냐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문제는 우리정부가 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기도 어려울 정도로 꼬이게 만들었느냐는 점이다.
80년대 초반 쇠고기 및 생우 수입으로 국내축산농가를 결딴낸 잘못이 일을 악화시킨 큰 원인이다.
문제를 꼬이게 만든 근본원인이 정부의 도덕성과 신뢰감상실에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쇠고기수입을 둘러싼 갈등은 평소 정부가 어떤 철학과 자세로 국정에 임해야하느냐에 대해 하나의 경종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미국의 압력과 농가의 반발 틈바구니에 끼여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갈지는 앞으로 두고 볼 문제다.
현재까지 드러난 대응방안은 쇠고기뿐 아니라 담배수입으로 인한 피해 농가를 포함, 수입에 따른 이익을 농가에 환원한다는 정도의 얘기다.
그러나 이정도의 방책이 미국이나 국내 농가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 줄 것인지 미지수로 남는다.
정부는 차제에 이제까지의 임기 응변식 통상외교에서 탈피, 흑자시대외 우리분수에 맞는 통상정책을 정립하여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할 것은 과감히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켜나가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를 높이고 국민들에게도 여건변화에 맞는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할 것이다. <박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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