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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코드 브랜드와 국가 브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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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계화 시대에 나날이 중요해지는 것이 이른바 '국가브랜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브랜드는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인데,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모습과 미래지향적 가치, 그리고 무한한 잠재력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국제공항 안내판을 비롯한 각종 정부 홍보물에서 요즘 가장 잘나가는 문구가 바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돌이켜보면 '다이내믹 코리아'가 국가브랜드로 등장하는 과정부터 다이내믹했다. 2001년 '한국 방문의 해'가 끝나갈 무렵 김대중 정부는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국가브랜드 제정사업에 착수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국가상징 영문 캐치프레이즈 마련 및 활용방안' 논의를 위한 관계기관 회의가 열린 이후 대통령 주재 '2002 월드컵.아시아대회 준비상황 합동보고회'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를 최종 확정하기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 정부는 주한 외국인이나 재외공관, 해외 유관민간단체 등의 의견 취합은 물론 KBS를 통한 인터넷 국민여론조사까지 마쳤다고 한다.

여기서 의사결정 과정의 긴박성은 일단 논외로 하자. 하지만 해당 분야 전문가의 역할이 눈에 크게 띄지 않는 것은 간과하기 어렵다. 만약 상품브랜드나 기업브랜드가 아닌 국가브랜드라고 해서 관(官) 주도가 당연시되고 여론의 호응이 이를 정당화하리라고 여겼다면 우리는 변명의 여지없는 홍보 후진국이다. 스포츠 행사 준비의 일환으로 국가브랜드가 탄생했다는 사실 또한 박수 칠 일은 아니다. 백 번 양보해 딴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한 중국이 국가브랜드 개발 5개년 계획 용역을 외국 홍보전문회사에 발주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무언가 여운을 남긴다.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국가브랜드를 지속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현재 정부에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이미지제고위원회'가 구성돼 있는데 장.차관류 '정부위원' 10명은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9명의 '민간위원'도 상당수 반관반민(半官半民)이다. 어쩌면 '다이내믹 코리아'는 현 정부를 위한 최적의 '코드 브랜드'가 아닌가 싶다. 참여의 이름으로 권력을 교체하고 개혁의 명분으로 세상을 변혁하겠다는데 어찌 온 나라가 다이내믹해지지 않고 배길 것인가. 지나간 역사 또한 투쟁이나 항쟁과 같은 온갖 '운동사'로 정렬하는 마당이라 '다이내믹 코리아'는 과거사 정리와도 궁합이 맞는 셈이다.

물론 다이내믹 자체가 나쁜 뜻은 아니다. 국가브랜드가 어쩌다 정권의 이해와 일치할 수도 있다. 문제의 본질은 국가브랜드로서의 시대적 적실성(適實性)과 독창적 품격 여하다. 행여 우리가 아무런 문화적 전통이 없는 미개국이거나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바쁜 개도국, 혹은 영구혁명이 필요한 사회주의체제라면 또 모른다. 그러나 언필칭 반만년 역사를 자부하며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어느덧 세계적 국가로 성장한 나라가 계속, 그리고 굳이 역동적으로 비쳐져야 할까. 그나마 영어로 최소한의 운율마저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다이내믹 코리아'다. 이 점에 관한 한 우리는 동남아 국가들에도 크게 밀린다.

문화가 국력이고 매력이 국부인 시대에 '다이내믹 코리아'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결여한 데다 철학적 기반과 미학적 운치마저 결핍된 '다이내믹 코리아'는 21세기 대외용 국가브랜드가 되기에 너무나 평범하고 진부하다. 그런 만큼 싫든 좋든 지난 100년 가까이 일종의 비공인 국가브랜드 지위를 구가해 왔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land of morning calm)가 요 몇 년 새 함부로 버려지고 갑자기 사라지는 현실은 전혀 반갑지 않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