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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생이 융합 전공, 창의인재 키워 통일한국 이끌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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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4차 산업혁명은 모든 대학의 화두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은 과학과 기술, 산업적 관점에서만 미래 변화를 논하고 있다. 하지만 황준성 숭실대 총장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황 총장은 “과학 발전의 밑바탕에 인간 존중의 정신이 깔려 있어야만 사회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황 총장으로부터 교육의 미래와 대학이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최근 그의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개교 120주년 숭실대 황준성 총장 #4차 산업혁명 핵심은 결국 사람 #빅데이터·통일외교 등 1+1 전공 #마지막 학기는 학과마다 창업 과목

황준성 총장은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기술을 터득하는 곳으로 미래에도 그 중요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황준성 총장은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기술을 터득하는 곳으로 미래에도 그 중요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컴퓨터학과 등 국내 최초 타이틀 많아

4차 산업혁명 핵심을 사람이라고 했는데.
“4차 산업혁명은 산업의 생태계뿐 아니라 삶의 방식과 질 또한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술은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다. 혁명의 밑바탕엔 인간 존중이 깔려 있어야 한다. 숭실대에선 내년부터 인공지능(AI)과 사람이 대립하지 않고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켜 나갈지 등을 고민하는 필수 교양수업을 도입한다. 책임교수도 이미 정해 놨고 현재 세부 교육과정을 준비 중이다.”
숭실대의 창업정신과도 이어지는 얘기 같다.
“1897년 미국의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가 평양에 처음 학교를 세울 때부터 숭실의 교시는 인류의 번영을 위해 봉사할 지도자를 키우는 것이었다. 숭실대는 1906년 최초의 4년제 대학으로 인가받은 뒤 38년엔 일제의 신사 참배 요구와 압제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했다. 숭실의 정신은 늘 사람이 우선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른 대학과 달리 통일교육에 힘을 쏟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숭실대는 평양에 본교가 있던 국내 유일의 이산 대학이다. 이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통일교육을 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통일교육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법을 배운다. 통일부의 통일교육 선도대학으로 선정돼 매년 4억원씩 지원금을 받을 만큼 앞장서고 있다. 모든 학생은 교양 필수로 통일수업을 듣고 3박4일간 캠프를 통해 사명감을 일깨운다. 시큰둥했던 학생들도 한 학기가 지나고 나면 생각이 확 바뀐다.”
지난달 개교 120주년 기념식에서 비전 ‘숭실 4.0’을 발표했다.
“사실 우리 대학엔 ‘최초’ 타이틀이 많다. 1970년 국내 처음으로 컴퓨터학과(전자계산학과)를 신설했고 중소기업대학원(83년)·IT대학(2006년) 최초 설립 등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발 빠르게 대학 구조를 재편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숭실 4.0’은 미래에 필요한 융·복합 인재를 기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울러 국내 최고의 창업선도대학, 사회에 공헌하는 인재 양성, 미래 통일한국 대비와 평양 캠퍼스 재건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실행 방안은.
“올해부터 융합특성화자유전공학부를 만들었다. 기계공학과·경영학과 등 20개 학과가 참여하는데 1학년 때는 융합역량·창의성·리더십 등 교양 위주로 수업을 듣는다. 2학년 때는 본인 전공에 추가로 융합전공을 하나 더 선택한다. ‘1+1’ 전공 시스템이다. 융합전공에는 스마트자동차, 빅데이터, 통일외교 및 개발협력 등이 있다. 앞으로는 숭실대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이 융합전공을 이수하도록 할 계획이다. 신임 교원 선발 때도 다른 전공학과에서 강의가 가능한 융·복합 능력이 있는 교수를 우선 채용하고 있다.”
숫자로 본 숭실대

숫자로 본 숭실대

학생이 전공 이름·교육과정 등 신설 제안

지난 9월 시작한 DIY자기설계융합전공도 대학가에서 큰 관심이다.
“우리는 전 세계 160개 대학과 커리큘럼을 공유한다. 이런 네트워크를 활용해 학생들이 직접 필요한 전공을 만든다. 학생이 직접 전공 이름과 교육과정, 수업 구성까지 결정해 신청하면 학교가 심의를 거쳐 전공을 인정해 준다. 이번 학기엔 5개 전공이 정식으로 인정됐다. 그중 ‘유비쿼터스 의공학’의 경우 의학과 공학이 융합돼 있고, 스페인 라코루냐대에서 소프트웨어공학과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는 과정도 포함돼 있다.”
‘7+1’ 도전학기도 눈에 띈다.
“전체 8학기 중 마지막 학기는 학생 스스로 도전해 보는 거다. 학과마다 창업 과목을 개설하고 학교 안에 벤처 스튜디오를 만들어 창업 동아리를 키워 나가고 있다. 학생들이 창업제안서를 내면 심의를 통해 장학금을 주거나 펀딩을 한다. 지난달엔 처음으로 30명 정도의 학생을 선발해 실리콘밸리 기행을 다녀왔다.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새로운 꿈을 가져 보라는 의미다.”
이런 목표들을 달성하려면 교육 방식도 바뀌어야 할 텐데.
“교육의 틀을 변화시키고 있다. 강의실에 앉아 수업만 듣던 시대는 지났다. 플립러닝(Flipped Learning) 방식으로 수업을 개편해 일반적인 교과 내용은 온라인으로 듣고, 오프라인에선 더욱 창의적이며 문제 해결을 요하는 내용으로 수업한다. 발표와 토론 등이 주요 학습 방식이 될 것이다.”

강의는 온라인으로 듣고, 수업 땐 토론

교육개혁 과정에 구성원들의 반발은 없었나.
“처음에 교수들이 불편해했다. 그러나 학생 입장에선 그 방향이 맞다. 미래엔 1명이 3개 영역에서 5개 이상의 직업과 19개가 넘는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시대가 될 거다. 지금과 같은 대학 시스템으론 경쟁력이 없다. 융·복합 능력과 창의성을 갖춰야 한다.”
정부의 대학 정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회에선 수요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대학에 자율성을 주고 학생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대학이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지 분석하고 부족하다면 뭘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세웠으면 좋겠다.”

◆황준성 총장

숭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모교 교수로 부임했다. 학부 강의 시절 토론 중심으로 수업하고 기말엔 꼭 구술시험을 치른 것으로 유명하다. 두루 소통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54년 대구 출생.

만난 사람=강갑생 사회1부장·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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