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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文 대통령 방중 언급 없는 중국 발표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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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문 대통령의 다음달 방중을 비롯해 미래지향적 양국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청와대는 발표했다.

관계 개선 속도와 수위 조절하겠다는 징표 #대신 청와대 발표서 빠진 사드 문제는 언급 #터널 빠져나왔지만 아직은 살얼음판 관계

중국 외교부도 홈페이지에 게재한 발표문을 통해 시 주석이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양호한 한중 관계는 역사와 시대의 대세에 부합하는 양국민 공통의 바램”이라며 한·중 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였다고 밝혔다. 한국측 발표와 일치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양국 발표에 차이가 나거나 강조점이 다른 부분이 발견된다.
중국 발표문에는 문 대통령의 방중에 관한 언급이 일체 없다. “한국 외교장관의 이 달 방중을 환영한다”고만 썼을 뿐이다. 당연히 중국 매체들의 보도에서도 빠졌다. 이는 시진핑이 외국 정상을 초청할 경우 발표문에 넣는 관례와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연내 방중에 대해 양국 정상의 공감대가 이뤄진 것은 ‘팩트(사실)’로 보인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에 따르면 시 주석은 “문 대통령과 나의 상호 왕복을 통해 중한 관계를 이끌어 나가자”며 “평창 올림픽 때 방한을 위해 노력하겠다. 만일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도 “다낭 정상회담 이전부터 강경화 장관의 방중(이달 하순)에 이은 문 대통령의 방중을 실무적으로 물밑에서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APEC정상회의가 열리는 베트남 다낭을 방문중인 문재인대통령 11일 오후(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APEC정상회의가 열리는 베트남 다낭을 방문중인 문재인대통령 11일 오후(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결국 중국은 문 대통령 방중을 한국측이 가장 중요한 성과로 내세우리란 걸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발표문에서 생략한 셈이다. 중국이 자국민이나 국제사회를 향해 이를 공표하기에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란 의미다. 이는 한·중 관계 개선의 속도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징표다.

대신 중국이 강조한 부분은 따로 있다. “다시 한번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제 문제의 입장을 밝혔다. 상호 핵심이익과 중요 우려 사항을 쌍방은 존중해야 한다”는 시 주석의 발언이다. 청와대 발표에는 빠진 부분이다. 국영 신화통신과 인민일보의 속보는 이 부분을 앞세우고 제목을 달아 보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중국이 종래 가져왔던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10·31 공동 발표문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양국의 온도차는 두 정상의 악수 장면 사진에서도 드러났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사진에서 문 대통령은 웃고 있지만 시진핑 주석은 웃음을 참는 듯 입을 다문 채 다소 어색한 표정이었다.
같은 날 만난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 등을 만날 때도 비슷한 표정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활짝 웃는 표정을 지은 것과는 대조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일 베트남 다낭 크라운플라자호텔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다낭=김상선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일 베트남 다낭 크라운플라자호텔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다낭=김상선 기자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미묘한 시 주석의 표정관리에서 한·중 관계 개선에 임하는 중국의 입장이 읽힌다. 중국은 사드 봉합 합의 이후 거듭 “한국은 약속을 지키고 행동으로 보이라”고 요구해 왔다. 강경 일변도이던 중국 정부가 갑작스레 180도 입장을 선회하는 모습을 자국민에게 보일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때문에 중국은 ‘표정관리’를 하면서 관계 개선 속도와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본격적인 사드 보복 조치 철회가 더딘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된다. 문대통령의 방중이 이뤄질 때 선물로 내놓기 위해 카드를 아끼고 있다는 풀이도 나온다.
그 때까지 한국의 태도를 저울질하며 문 대통령의 방중과 정상회담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협상 전술일 수도 있다. 노영민 주중 대사의 표현대로 한·중관계가 바닥을 치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온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의미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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