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나현철의 직격 인터뷰

“탈원전이 맞는 건지 아닌지 몰라… 보상이나 잘해 달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탈원전 정책 직격탄 맞은 이희진 영덕군수

지난 2010년 유치한 천지 원전을 둘러싼 주민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희진 영덕군수는  지역 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정책 추진은 다신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2010년 유치한 천지 원전을 둘러싼 주민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희진 영덕군수는  지역 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정책 추진은 다신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달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는 예정대로 추진하되 향후 원자력발전 비중은 축소하라는 권고를 정부에 냈다. 정부는 곧장 원전 건설을 재개했지만 이후 건설 예정이던 원전은 추진을 중단했다. 이 정책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곳이 경북 영덕군이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당초 2019년부터 천지 1·2호기를 착공하고 추후 3·4호기까지 지을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영덕읍 석리, 노물리, 매정리에 산재한 325만㎡의 부지 중 이미 59만㎡를 매입했다. 토지 매입비와 설계비 등에 이미 3500억원가량이 투입됐다. 최근 원전 건설 예정지 주민들이 ‘건설 계속’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현지의 분위기와 목소리를 가장 잘 아는 이희진 영덕군수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주민투표도 하지 않고 #2010년 천지 1·2호기 신청 #중앙에서 정책 오락가락 #지방만 골병들어 #생색나는 원전 수출만 #관료들이 대통령에게 보고 #지역 주민 의견 묻지 않는 #국책사업 추진 다신 없어야

원전 건설 반대 시위도 있는가 하면 찬성 시위도 있다. 서울에서 보면 주민들의 본심이 뭔지 헷갈린다.
“그동안 쭉 해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60~65%가량의 주민들은 반대하고 35%가량이 찬성한다. 전체적으로 반대 여론이 많다.”
의외다. 반대 여론이 많은 이유는 뭘까.
“영덕은 인구 4만 명의 작은 군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게와 송이버섯 산지다. 대게는 잘 알려져 있는데 송이도 전국 생산량의 25~35%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둘 다 값나가는 자연 자원이다. 원전이 생기면 둘 다 영향을 받을까봐 반대하는 것이다.”
원전 없이도 충분하다는 건가.
“그렇다. 지난해 당진-영덕고속도로가 뚫려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12월이면 포항에서 삼척까지 철도가 연결된다. 대게철이면 평소 40분 거리인 포항~영덕이 4시간 걸린다. 유명한 강구항에 대게단지가 생기고 실업자가 없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평일 손님도 서너 배가 늘었다. 하루에 대게 1억원어치를 파는 가게도 10곳이 넘는다. 강구항 땅값은 3.3㎡에 2000만원, 3000만원 한다. 그런데 군 한가운데 원전이 들어선다니 누가 좋아하겠나. 원전이 외진 곳에 있는 울진이나 삼척과는 상황이 다르다.”
그런데도 원전 건설 재개 여론이 끊이지 않는데.
“당사자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2010년 원전 건설이 시작되면서 자신의 땅과 집이 고시지역으로 묶였다. 빗물이 새고 수도 배관에 이상이 생겨도 손을 대지 못한다. 경사가 가파른 곳이라 시간이 갈수록 급속히 주거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한수원의 이주 약속을 믿고 이렇게 6~7년 고생했는데 막상 원전을 안 짓는다고 하니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시위 강도가 생각보단 크지 않다.
“수용 대상 토지의 55%가량을 외지인이 갖고 있다. 2010년 신청하고 2012년 고시되는 사이에 보상금을 노린 외지인 투기가 많이 들어왔다. 보상을 많이 받으려고 이런저런 건물을 많이 지어놨는데 직접 보면 기가 찬다. 보일러도 없이 펜션이라고 지어놓고 있다. 이들 외지인들은 아직 시위 등에 나서지 않는다. 군민 간의 찬반 갈등만 깊어지고 있을 뿐이다.”
원전 찬반 갈등이 생긴 근본 원인이 뭐라고 보나.
“애초에 주민들 의견을 묻지 않았다. 전 군수 시절인 2010년 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를 신청한 적이 있다. 결국 경주에 넘어갔지만 그때 찬성이 89%인가 나왔다. 그걸 보고 정부가 원전 유치를 신청해 보라고 해서 공무원들이 했다. 물론 수용지역 133가구의 동의서를 받아 형식적인 절차는 거쳤다. 하지만 원전이 꼭 수용지역 사람들의 동의만으로 지어질 수 있나. 타 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갈등이 지속돼 왔다.”
주민투표도 안 했다는 건가?
“그렇다. 주민투표는 2015년에야 했다. 반대가 많이 나왔는데 정부에서 요건을 못 갖췄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주민들 의견을 무시하고 국책사업이 추진됐다. 중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없었던 셈이다.”
정부에서 지원 약속을 하지 않았나?
“한수원에서 1조원을 지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실체가 없었다. 2014년 총리와 같이 온 산자부 차관에게 ‘영덕을 위해 뭘 할 거냐’고 하니 ‘아직은 구체적 계획이 없다’고 하더라. 지역민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인데 중앙정부가 하는 일이 그렇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10대 요구 사항을 정리해 정부에 제안했다. 복지센터, 한전 연수원 건립, 병원 신설 등이었다. 그런데 중앙정부에선 ‘병원은 지어줘도 군에선 운영 못한다, 연수원 건립 대신 민간 콘도를 사서 주면 안 되겠느냐’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구체적 계획도 없고 의지도 없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을 그렇게 허술하게 하다니 이해가 안 된다.
“나도 그렇다. 한번은 하도 답답해서 산자부 공무원들에게 물었다. ‘대통령에게 영덕 원전을 보고는 하고 있느냐’고. 그랬더니 ‘원전 수출만 보고한다’고 하더라. 그 결과 박근혜 정부 5년간 대통령 입에서 ‘영덕 원전’이나 ‘천지 원전’이란 말 한마디가 안 나왔다. 중요한 사회적 현안이 대통령도 모르는 새 추진되고 있었던 거다. 한번은 서울에서 갈등조정위원이라는 사람이 다녀갔는데 이후 아무 대책이나 반응이 안 나왔다. 그래서 다신 오지 말라고 했다. 중앙정부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추진할 뿐 정작 당사자에겐 관심이 없다.”
그동안 정부 지원은 전혀 없었나.
“군 1년 세수(340억원)보다 많은 380억원이 나왔는데 한 푼도 못 썼다. 군 의회에서 그 돈을 쓰면 원전을 인정하는 셈이라며 반대했다.”
탈원전 정책에 따라 천지 원전도 환경평가 등 건설 프로세스가 중단됐다. 그에 대한 정부 대책은 있나.
“지난번 공론화위와 정부 후속 발표 때 그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도 영덕은 다른 후보 지역에 비하면 갈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군 차원의 상생협의회를 통해 찬반 의견을 가감 없이 듣고 불만을 해결해 주려 노력하고 있다. 이것도 사실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지방정부에 떠맡기고 있는 셈이다. ‘덕이 차 있는 동네’라는 뜻의 영덕답게 주민들의 성품이 점잖은 것도 한몫을 한다고 본다.”
원전 사태를 겪으며 느낀 점은?
“국가 정책엔 주민 수용성이 먼저 고려돼야 하고 한번 정한 정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둘 다 제대로 안 됐다. 중앙정부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지역만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주민은 고통을 겪고, 몇 년간 군의 행정도 방향을 잃은 셈이 됐다. 지역 주민의 이익과 의사를 묻지 않는 국책사업은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요 정책을 추진하는 절차와 방법을 명확히 규정한 신규 원전지역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원전이 지연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탈원전이 맞는지 아닌지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다만 그동안 피해를 본 주민들에 대한 보상이 차질 없이 신속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 또 원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정부가 도와줬으면 한다. 영덕은 도가 지정한 신재생에너지 육성지역이고 전국에서 바람이 세기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육성지역까지 됐는데 잘 안 되고 있나?
“인센티브의 문제다. 군내에 풍력발전기가 24기 가동 중이다. 한 대당 연간 5억~10억원씩 약 100억원어치의 전기를 생산한다. 그런데 군에 떨어지는 건 기당 연간 100여만원의 세금뿐이다. 풍력발전기 전체 세수가 3000여만원밖에 안 된다. 그런데 풍력발전기가 들어설 산에서 나오는 송이는 1㎏에 수십만원 한다. 그러니 주민들은 당연히 반대한다. 피해는 가깝고 큰데 혜택은 멀고 적다. 풍력발전기가 들어서면 우리 군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를 군수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원전도 같은 문제다.”
지방 분권이 강화돼야겠다.
“당연하다. 비닐하우스가 찢어지고 벼가 누우면 농부가 바로 군수에게 사진 찍어 보내고 대책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군수는 곧바로 응답해야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 하세월이다. 지방 사정은 지방이 제일 잘 아는데 뭘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대통령 중심제 때문이라고 느끼나.
“그렇다. 모든 게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중앙정부 위주로 돌아간다. 획일적이고 지역 특성을 감안하지 않는다. 예컨대 축구장 하나 지으라고 예산이 20억원 온다. 하지만 그건 평지 기준이고 영덕처럼 산이 많으면 환경평가를 하고 산을 깎아야 해서 90억원까지 든다. 중앙정부의 지방 행정이 그런 식이다. 세수 확보나 사업에서 지역적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 지자체 공무원들의 수준도 이제 많이 높아졌다. 자율성이 커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방 분권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
“지방 분권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이해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요즘 국민은 도덕적 기준도 높고 정치에 대한 관심도 많다. 노인정에 가서 군수가 새로운 소식을 들을 정도다. 이런 관심과 열기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지자체에 힘을 줘야 한다.”

이희진 군수는 …

영덕종고와 계명대를 졸업하고 중앙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옛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소속인 김찬우, 김광원, 강석호 의원실에서 오래 보좌관을 하다 2014년 49대 영덕군수가 됐다. ‘선(先) 안전대책’을 요구하며 사실상 신규 원전 유치 재검토를 내걸고 당선됐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