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D조명으로 전기료 절약" 자영업자 속여 중국산 불량품 판 업체

중앙일보

입력

경북 김천에서 파스타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36)씨는 2015년 10월 낮선 전화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조명값 할부 대출계약 맺고 20억원 가로채 #"정부 지원 사업" 거짓말에 영세사업자 498명 속아 #중국산 미인증 불량 LED…원가 10배 부풀려

“정부에서 지원받는 LED 설치업체입니다. 식당 전기료가 한 달에 얼마나 나오죠”라는 전화 상대방의 질문에 김씨는 순순히 가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어 "정부 에너지 절감사업으로 고효율 국산 LED로 무상교체해주겠다. 교체시 매월 50% 이상, 최대 75%까지 전기 요금 절감 효과가 있다"는 말에 김씨는 교체를 요청했다.

조명을 교체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3개월 이내에 비용 절감 효과가 없으면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다"는 말에 믿음이 갔다. 일주일 뒤 김씨 식당에 조명업체 관계자가 찾아왔다.

'정부 에너지절감사업(ESCO) 협조문'을 가져온 그는 함께 가져온 계약서를 내밀며 "정부 시행 사업에 대한 확인차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당장 설치비가 들지만, 전기 요금이 줄어들어 사실상 무료"라고 했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정부지원사업으로 고효율 국산 LED를 설치해주겠다고 속이고 중국산 불량 LED를 설치한 조명 설비 업체 대표 현모(39)씨 등 3명을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사진은 현씨 일당이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해 만든 가짜 문서. [서울 중랑경찰서]

서울 중랑경찰서는 정부지원사업으로 고효율 국산 LED를 설치해주겠다고 속이고 중국산 불량 LED를 설치한 조명 설비 업체 대표 현모(39)씨 등 3명을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사진은 현씨 일당이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해 만든 가짜 문서. [서울 중랑경찰서]

그는 "금융회사에서 나중에 전화가 오거든 정부가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네'라고 하면 된다"고도 설명했다. 결국 김씨는 총 650만원을 들여 가게의 조명을 모두 교체했다.

그런데 이후 김씨에게 매월 청구되던 전기료는 한 달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제2금융권에서 650만원을 대출받았다는 내용의 청구서가 날아왔다.

놀란 김씨는 환불을 요청하기 위해 해당 업체 측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받질 않았다. 그제서야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김씨는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피해를 보았다는 자영업자들이 있었다.

김씨가 지난 3월 국민신문고에 관련 민원을 접수한 뒤 전국에서 유사 사건이 신고됐다. 결국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조명 설비 업체 대표 현모(39)씨 등 3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7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 대표 현씨에 대해서는 무허가 업체를 운영한 점 등을 토대로 전파법·전기공사법 위반 혐의도 추가로 적용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씨 일당은 2014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전국의 영세업자들을 대상으로 "정부 지원으로 고효율 LED 조명을 무료 교체해준다"며 당사자 모르게 제2금융권의 대출을 받게 하는 방법으로 19억 5000만원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에게 속은 피해자는 500여 명에 달했다. 주로 치킨집이나 호프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이가 많고 영세한 자영업자가 대부분이었다. 피해 금액은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1700만원에 달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이 설치한 LED 조명은 정부사업과 무관한 중국산 미인증 제품으로 드러났다. 전기 절감 효과도 없었지만 설치비용도 원가의 10배나 부풀린 셈이었다.

그 사이 일부 피해자는 해당 기기 화재로 추가 피해를 보기도 했다. 현씨 일당은 피해자들이 항의나 환불을 요구하면 전화를 받지 않거나 폐업을 했다. 7차례나 폐업을 반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업체 영업 사원과 경리 실장 등 23명에 대해서도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탈세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최규진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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