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3살 현준이는 개목줄에 묶여 죽었는데" 외할머니 절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일 오전 아동학대로 숨진 현준(3)군의 외할머니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백경서 기자

9일 오전 아동학대로 숨진 현준(3)군의 외할머니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백경서 기자

"5월 1일에 박현준(아들)이 집 앞에 놔두고 갈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어디 잘 키워보세요."

법원,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된 계모와 친부 각각 징역 15년 선고 #지난 7월 12일 대구 한 아파트에서 3살 현준군 숨진 채 발견 #친부와 계모, "아이 말 안든는다" 학대…애완견용 목줄에 묶어 #3일간 방안에 갇혀 있던 현준군 목줄 침대에 걸려 질식사 추정

지난 7월 3살 아이의 목에 애견용 목줄을 채워 방치했다가 질식사하게 만든 그 사건.(중앙일보 7월 14일자 14면 보도). 사건의 가해자인 아버지가 아이 외할머니에게 보낸 문자다. 외할머니 박모(48)씨는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문자로 애를 데려다 준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 2개월 뒤 아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친부와 의붓어머니의 학대로 지난 7월 사망한 박현준(3)군. 현준군의 외할머니는 외손자가 억울하게 숨진 사실을 알리고 싶다며 이름과 얼굴 공개를 이례적으로 요구했다. [사진 현준군의 외할머니]

친부와 의붓어머니의 학대로 지난 7월 사망한 박현준(3)군. 현준군의 외할머니는 외손자가 억울하게 숨진 사실을 알리고 싶다며 이름과 얼굴 공개를 이례적으로 요구했다. [사진 현준군의 외할머니]

이날 오전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형사1부(조현철 부장판사)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된 의붓어머니 박모(22)씨와 친부 박모(22)씨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징역 25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피해자가 집안을 어지르고 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학대를 일삼고 개 목줄에 묶었다. 피해자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경추압박 질식사했다. 법이 보호하는 최고 가치인 생명을 침해해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각 20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도 이수토록 했다.

이 자리에는 현준(3)군의 외할머니 박씨가 있었다. 박씨는 “아이는 이제 살아 돌아오지 않는데, 저 사람들은 40살도 안 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다. 법이 제대로 심판한 게 맞느냐”며 한참을 주저앉아 울었다.

현준군 납골당. [사진 현준군의 외할머니]

현준군 납골당. [사진 현준군의 외할머니]

사건은 4년 전인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박씨의 18살 딸에겐 남자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딸은 "엄마 말을 잘 들을 자신이 없다"는 말을 남긴 채 돌연 집을 나갔다. 일년여 뒤인 2014년 7월 딸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현준이는 그해 5월 29일에 태어났다. 박씨는 그때 딸이 임신해 가출했다는 걸을 알게 됐다고 한다.

박씨는 "애를 낳았느냐고 물었더니 맞다면서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하더라. 그때 현준이가 세상에 나왔는지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혼인 신고를 하자마자 시부모님과 살고 있던 딸 부부는 당시 2개월밖에 안 된 현준이를 지금의 외할머니에게로 데려왔다. 처음엔 “둘이 데이트간다”고 하면서 일주일, 열흘씩 맡겼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애를 데려가지 않았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현준이가 너무 예뻤다. 그냥 너무 사랑스러워서 물고 빨고 하면서 키웠다. 정말 순한 데다가 말도 잘 들었는데 왜 집을 어지른다고 학대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박씨는 친부가 와서 재혼한다며 현준이를 데려갈 때까지 9개월간 현준이를 키우다시피 했다.

친부와 의붓어머니의 학대로 지난 7월 사망한 박현준(3)군. 현준군의 외할머니는 외손자가 억울하게 숨진 사실을 알리고 싶다며 이름과 얼굴 공개를 이례적으로 요구했다. [사진 현준군의 외할머니]

친부와 의붓어머니의 학대로 지난 7월 사망한 박현준(3)군. 현준군의 외할머니는 외손자가 억울하게 숨진 사실을 알리고 싶다며 이름과 얼굴 공개를 이례적으로 요구했다. [사진 현준군의 외할머니]

2014년 말 딸이 페이스북을 보여주며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헤어지겠다고 했다. 친부는 2015년 초 현준이를 데려간 뒤로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박씨는 "현준이가 너무 보고 싶은데 친부가 보여주려 하지 않아 면접교섭권을 신청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사단이 났다"고 말했다.

그동안 박씨와 현준이의 친모는 현준이를 보여달라고 몇 차례 이야길 했다고 한다. 그러자 올해 5월 현준이의 친부는 "아이를 데려다 주겠다"고 한 뒤에 돌연 연락을 끊었다. 친부는 현준이가 보고싶다고 연락할 때마다 오히려 딸이 재혼한 것과 관련해 협박을 일삼았다. 박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애가 학대를 당한 흔적이 있으니 데리고 올려다가도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준군의 친부와 외할머니 박씨가 나눈 문자 메시지. 지난 5월 현준군의 친부가 박씨에게 "아이를 집앞에 놔두고 간다"고 말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친부는 아이를 놔두고 가지 않았으며 박씨 딸의 재혼을 언급하며 오히려 협박성 문자를 보낸 것으로 나온다. [사진 현준군 외할머니]

현준군의 친부와 외할머니 박씨가 나눈 문자 메시지. 지난 5월 현준군의 친부가 박씨에게 "아이를 집앞에 놔두고 간다"고 말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친부는 아이를 놔두고 가지 않았으며 박씨 딸의 재혼을 언급하며 오히려 협박성 문자를 보낸 것으로 나온다. [사진 현준군 외할머니]

결국 지난 7월 12일 대구 달서구 월성동 한 아파트에서 현준이는 질식사한 채 친부의 집에서 발견됐다. 사망한 지 8시간 뒤였다. 계모는 현준이에게 묶인 목줄을 풀고 나서 경찰에 "아이가 죽었다"고 신고했다. 119 구급대가 출동했을 당시 현준이는 자신의 방 침대에 엎드린 상태였다. 몸에 멍 같은 상처가 있었다. 턱에선 찢어진 상처도 확인됐다. 피를 흘린 것 같은 흔적도 아이의 침대에서 발견됐다. 사망 당시 현준군의 몸무게는 겨우 10㎏이었다. 키도 또래 아이들보다 작은 85㎝ 정도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에서 현준이의 사인은 '경추압박 질식사'로 확인됐다.

경찰은 의붓어머니와 친부를 아동학대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경찰에 의붓어머니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집을 어지럽히면 손으로 머리 등을 때리고 플라스틱 빗자루나 쓰레받기로도 때린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숨진 아이를 발견하고 곧바로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숨진 것을 보고 무서워 그랬다"고 했다. 경찰은 검안 결과 침대와 연결시켜 둔 목줄 때문에 목이 졸린 것으로 판단했다.

현준이는 숨지기 전 3일간 애완용 목줄에 목이 묵여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3일간 의붓어머니의 사촌여동생이 집에 놀러 왔으나 현준이가 방안에 있어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세 사람은 아이가 숨진 당일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셨다. 당시 경찰은 사촌여동생의 경우 추가 혐의점이 없어 귀가 조치했다.

학대로 사망한 현준군의 외할머니가 손자의 납골당 앞에서 울고 있다. [사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학대로 사망한 현준군의 외할머니가 손자의 납골당 앞에서 울고 있다. [사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박씨는 "고작 3살짜리 아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굶기고 때렸는지 모르겠다. 3일간 컴컴한 방에서 현준이가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하면 심장이 찢어진다. 징역 15년은 너무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도 "구형량에 비해 선고가 터무니없이 적은 것이 안타깝다"며 "이번 사건을 보면서 임신 동안 부모됨 교육과 구체적 양육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