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구멍 뚫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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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부실 기업을 되살리기 위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제도가 막바지 단계로 접어들면서 노조와 대주주의 잇속 챙기기로 변질되고 있다. 이를 감독해야 할 채권단도 노조 눈치를 보기에 급급해 부실 기업에 지원해준 공적자금의 회수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1998년 6월 이후 워크아웃에 포함돼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부실 기업은 83개다. 이들 기업에 채권단이 지원한 자금은 총 90조2천5백억원에 이른다. 그 덕분에 7월 말 현재 56개사가 부실의 멍에를 벗었고, 현재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9개사도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권영준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는 "워크아웃 기업에서 채권단의 무책임과 노조.대주주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권단의 퍼주기=쌍용양회는 지난 4일 채권단에서 5천7백억원의 출자전환과 1천5백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받았다. 9월 말까지 갚아야 할 빚도 상환기간이 2년 연장됐다. 이 회사는 2년 전 이미 1조6천5백억원의 빚을 출자전환했다.

채권단은 파격적인 2차 지원을 하면서 회사에 추가 자구계획을 요구하지 않았고, 대주주인 일본계 TCC에 손실을 분담시키지도 않았다. TCC는 오히려 회사가 정상화된 뒤 채권단이 보유 지분을 팔 때 우선적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공적자금으로 부실 기업의 주주에게 이득을 주는 모양새다.

◇노조의 매각 방해=서울보증보험은 워크아웃을 졸업한 경남기업을 지난 5월 제3자에 매각하기로 했다. 그러자 경남기업 종업원들은 노조를 결성한 뒤 매각 반대에 나섰다.

서울보증은 결국 고용 보장과 지분 매각을 제한하는 요구를 받아들인 후 지난 22일 매각 계약을 했다. 우리은행이 매각을 추진하는 신동방은 노조가 제3자 매각을 할 경우 정년까지 전직원의 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공적자금을 동원해 망할지도 모르는 회사를 살려 놓았더니 노조가 먼저 자기 몫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워크아웃 기업의 시장 교란=최근 건설업계 중견 A기업은 아파트 재건축 공사 입찰에 나섰다가 워크아웃으로 살아난 경쟁업체의 막판 덤핑 공세에 고배를 마셨다.

이 회사 관계자는"우리 회사는 빚 갚고 이자 갚느라 허덕대는 동안 워크아웃.법정관리 업체는 금융 특혜를 무기로 덤핑에 나서고 있다"며 "정상 기업이 부실 기업에 밀려날 판"이라고 꼬집었다.

쌍용양회는 시멘트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지난해 이후 시멘트 가격 급등을 주도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999년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간 신호제지는 최근 인쇄용지 가격을 평균 5% 내리는 저가 공세에 힘입어 인쇄용지 시장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제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펄프 가격이 올라 종이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호제지 김종완 팀장은 "신호는 대리점을 상대로 한 판매 비중이 높아 실수요자에게 파는 가격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경민.장세정 기자

*** 부실기업 살려 채권 회수

◇워크아웃이란=기업이 파산 등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은행 등 채권자와 채무자가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당장 파산시키는 것보다 기업에 대해 빚을 어느 정도 탕감해주고 이자를 감면해주는 등의 혜택을 줌으로써 기업이 회생할 수 있도록 한 뒤에 빚을 받아내는 게 채권자로서도 유리하다는 계산에서 나온 부실기업 처리 방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을 한꺼번에 부도 처리할 경우 경제 및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을 우려해 도입됐다. 채권 금융회사가 빚을 탕감해주고 이자 상환을 유예해주며 필요할 경우 신규 자금까지 지원해주고 대신 해당 기업도 자구 노력을 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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