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촛불 1년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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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앙일보 <2017년 10월 28일 30면>
촛불 1년, 이제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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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9일 광화문광장에서 처음 켜진 촛불은 1년 만에 대한민국을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바꿔 놓았다. 보수·진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일치된 촛불 함성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다. 대선이 치러졌으며 문재인 정권이 탄생했다. 촛불이 타오르던 6개월 동안 단 한 차례의 폭력 시비, 단 한 명의 구속자도 없었다. 이런 정치적 격변을 시민의 질서 있는 저항 속에 완전히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뤄 냈으니 전 세계가 한국의 촛불집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 촛불 1년을 기리는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광화문·여의도 등 전국 곳곳에서 준비돼 있다. 헌법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초심을 생각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행동’이라는 연합세력이 촛불정신을 정의(定義)하고 독점해 정치까지 흔들려 한다. 이들은 집회 뒤에 적폐청산 미흡을 이유로 청와대 앞 경고 행진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가 시민들의 비난이 폭주하자 취소한 바 있다. 퇴진 비상행동을 이끌었던 민주노총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노정(勞政) 대화에 불응하는가 하면 수감 중인 한상균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등 정의를 독점하고, 법치를 무시하는 등 안하무인식으로 설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퇴진 비상행동에 참여한 많은 단체가 사드 철수, 반미 투쟁, 사실상의 북핵 수용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과 아무 관계없는 이념선동 투쟁으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오죽하면 퇴진 비상행동 측과 다른 방식으로 여의도에서 촛불 1년을 기념하겠다는 순수 시민들의 포스터에 ‘여의도 촛불파티엔 뜬금없는 반미주의, 기-승-전-석방, 대책 없는 청와대 행진 세 가지가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겠는가. 법치와 민주주의, 반듯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들고 일어선 연인원 1700만 명 시민의 촛불이 불법, 반민주, 일그러진 나라를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일각의 우려를 직시해야 한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온 나라가 집권세력이 주도하는 적폐청산이란 칼춤에 몸살을 앓고 있다. 과거를 파고 정적을 치고 정책을 폐기한다. 용서와 화합, 미래를 얘기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런 얘기를 하면 조직된 댓글부대에 의해 또 다른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몰리기 일쑤니 입을 닫고 침묵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념과 노선만 달라졌을 뿐 적대의식이나 국가통치 방식은 달라진 게 없다는 한탄도 나온다.

촛불혁명은 정치적 레토릭이다. 이 정부가 촛불로 태어난 것은 맞지만 혁명정권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 나라의 정통성과 안보, 산업의 기틀마저 불태워선 안 된다. 촛불은 시민 일체감과 국민 통합을 만들어 냈다. 촛불은 자기가 타면서 주변을 밝히는 사랑과 희생의 상징이다. ‘나는 정의, 너는 불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같은 독선과 오만으로 나라는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촛불은 1주년을 맞아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촛불로 단지 정권만 바뀌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집권세력부터 어떻게 나라를 이끌지 깊이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한겨레 <2017년 10월 28일 23면>
촛불 1년, 깨어 있는 시민이 민주주의의 보루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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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맘때 광화문에서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과 광화문광장에는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시민들의 촛불이 켜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광화문 일대는 촛불의 바다로 뒤덮였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외침이 온 나라에 울려 퍼졌다. 주말인 28일에는 촛불 1년을 기리는 행사들이 예정돼 있다.

촛불혁명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서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적 명제를 시민들 스스로 확인해 냄으로써 민주주의의 폭과 깊이가 크게 확대됐다. 국민을 배신한 불의한 국가권력을 심판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질곡이던 박정희 이데올로기, 극우 보수주의를 극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시민의 집단지성이 머뭇거리는 정치권을 이끌어 한 걸음씩 나아가도록 했다. 그 결과 박근혜 정권을 탄핵하고 5·9 대선을 통해 새로운 민주정부를 출범시켰다. 시민들은 비폭력 평화적 수단으로 일관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유례없는 찬사를 받았다.

촛불의 요구는 “이게 나라냐”는 구호로 압축된다. 시민들의 외침은 단순히 정치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정유라 특혜 입학에서 보듯 부정부패와 비리를 없애고, 금수저·흙수저로 상징되는 부의 대물림과 기회의 차별을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정책 결정과 집행에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달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외침이었다.

뒤돌아보면 지난 1년 성과도 있었지만 가야 할 길이 더 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부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확대, 탈원전 숙의민주주의 도입 등 가시적 조처들이 있었지만, 더 중요한 법·제도·정책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국정 농단의 온상인 비민주적·탈법적 잔재들을 일소하고 민주적 제도와 관행이 국정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검찰 개혁과 재벌 개혁, 정경유착·갑질 근절, 방송 정상화 등을 위한 과제들을 착실히 추진해야 한다. 실의에 빠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선거법과 헌법 개정을 서둘러 촛불의 나라에 걸맞은 정치제도를 갖춰야 한다. 촛불로 지킨 국가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북핵 문제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촛불의 요구는 미완이며 촛불혁명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촛불의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를 중심으로 강고한 개혁 블록을 구축해야 한다. 개혁과 청산, 미래를 위한 협치와 연대의 폭을 넓혀야 한다. 촛불 1년을 지나며 움츠렸던 기득권 세력들은 수구 정당과 언론을 앞세워 반격에 나서고 있다. 적폐청산을 정치 보복이라며 자신들이 10년 세월 쌓아온 적폐를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힘 있고 질서 있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국정 전반의 적폐청산은 정상국가, 선진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경로다. 블랙리스트, 국정원 댓글, 세월호 7시간,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 어느 것 하나 그냥 덮을 수 없다. 미래로 가기 위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다만, 적폐청산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처벌보다는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정원 개혁 등 제도적 청산도 중요하다.

촛불혁명 완수를 위해선 시민들의 일상적 참여와 감시가 필요하다. 촛불의 요구를 정치권에만 맡겨 둘 일은 아니다. 지난해 시민 집단지성이 촛불을 이끌었듯 정치가 제대로 길을 잡도록 시민이 견인해야 한다. 시민이 들어 올린 촛불을 정치가 꺼뜨리도록 놔둬선 안 된다. 항상 마음속에 촛불을 간직해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다.

논리 vs 논리
미래 위해 새 출발 해야 vs 개혁·청산 중단 안 돼

지난달 28일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 1주년 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촛불과 휴대전화 불빛을 비추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8일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 1주년 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촛불과 휴대전화 불빛을 비추고 있다. [뉴시스]

<단계1> 공통 주제의 의미

1년 전인 지난해 10월 29일 시작되었던 촛불집회는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막을 내렸지만 그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국정 농단 혐의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어 재판을 받고 있고 5월 대선에서는 정권이 바뀌어 문재인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잘못된 국정 운영의 틀을 바꾸자는 ‘적폐청산’ 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목소리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광화문광장에선 기념집회가 개최됐고 여의도에선 촛불파티도 열렸다. 그동안 촛불집회에는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총 23차례에 걸쳐 1700여만 명의 시민이 동참했다. 시민들은 헌법과 법률을 짓밟은 대통령을 불신임하고 헌법 제1조에 의거, 퇴장시켰다.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보도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 냈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저마다 다양한 동기와 목적을 가졌지만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바로잡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망은 모두 같았다. 수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광장은 평화로웠고 무질서하지 않았으며 우려할 만한 폭력 사태도 없는 세계가 주목한 광장민주주의의 실험장이기도 했다. 촛불집회 1년을 맞아 중앙과 한겨레 사설은 이런 촛불집회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있어서는 서로 같은 입장이다. 중앙은 ‘헌법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초심을 생각하는 날’로 기록했고, 한겨레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서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단계2> 문제 접근의 시각차

촛불집회의 의미와 전개 과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변해야 할 대상과 방법 등을 제시하는 데서는 두 신문이 뚜렷한 시각차를 나타낸다. 한마디로 중앙은 ‘미래를 향한 새 출발’에, 한겨레는 ‘개혁과 청산’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 동시에 중앙은 촛불집회를 이끌고 있는 세력들의 이념 투쟁에 대해 경계한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행동이라는 연합세력이 촛불정신을 정의하고 독점해 정치까지 흔들려 한다’면서 이들이 ‘법치를 무시하는 등 안하무인식으로 설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퇴진 비상행동에 참여한 많은 단체가 사드 철수, 반미 투쟁, 사실상의 북핵 수용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과 아무 관계없는 이념선동 투쟁으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겨레는 촛불의 요구는 ‘이게 나라냐’는 구호로 압축된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외침은 단순히 정치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정유라 특혜 입학에서 보듯 ‘부정부패와 비리를 없애고, 금수저·흙수저로 상징되는 부의 대물림과 기회의 차별을 바로잡자는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정책 결정과 집행에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고 한마디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외침이었다는 것이다.

<단계3> 시각차가 나온 배경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기태중앙은 새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적폐청산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온 나라가 집권세력이 주도하는 적폐청산이란 칼춤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를 파고 정적을 치고 정책을 폐기한다’는 주장이다. 용서와 화합, 미래를 얘기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이런 얘기를 하면 조직된 댓글부대에 의해 또 다른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몰리니 입을 닫고 침묵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겨레는 ‘지난 1년 성과도 있었지만 가야 할 길이 더 멀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등 가시적 조처들이 있었지만 더 중요한 법·제도·정책 과제들이 산적해 있으며 국정 농단의 온상인 비민주적·탈법적 잔재들을 일소하고 민주적 제도와 관행이 국정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검찰 개혁과 재벌 개혁, 정경유착·갑질 근절, 방송 정상화 등을 위한 과제들을 착실히 추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