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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심포니' 내달 10년 만에 한국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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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런던 심포니(LSO)는 지휘자의 전횡에 맞서 단원들이 직접 만든 교향악단이라는 점에서 베를린 필하모닉과 성격이 비슷하다. LSO 단원들이 25년째 상주 무대로 쓰고 있는 런던 바비칸홀의 로비 계단에 모였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앞줄 중앙의 수석 지휘자 콜린 데이비스 대신 정명훈씨가 지휘봉을 잡는다.[중앙 포토]

1904년 6월 9일 오후 3시 런던 퀸즈홀. 바그너의 '마이스터징어 서곡'에 이어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등이 연주됐다. 연주회가 끝나자 단원들은 연미복을 입은 채 악기를 들고 지하철 센트럴 라인을 탔다. 오후 7시부터 코벤트가든 오페라에서 연주하기 위해서였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는 이렇게 출범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지휘자와 협연자는 물론 연주 곡목까지 결정하는 '자립형 오케스트라'가 영국 최초로 탄생한 것이다. 창단 공연을 지휘한 한스 리히터는 출연료를 기부했고 LSO의 수석 지휘자가 됐다.

LSO가 3월 18일 10년 만에 내한 공연을 한다. 73년과 80년, 96년에 이어 네번째다. 96년에 이어 정명훈씨가 객원 지휘를 맡고, 200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중국 출신 피아니스트 리윈디가 협연한다.

10년 전과 달라진 점은 첼로 단원 출신으로 20년간 LSO의 살림살이를 맡아오던 행정감독 클라이브 길리슨(60)이 지난해 뉴욕 카네기홀의 예술총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것. 영국 웨일즈 밀레니엄 센터 CEO와 영국 예술위원회 음악감독을 지낸 캐슬린 맥도웰이 후임을 맡았다.

LSO는 퀸즈 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대타(代打) 출연 금지'를 선언한 지휘자 헨리 우드의 최후 통첩에 반발해 만든 '음악 공화국'이다. 당시엔 겹치기 출연이 아니면 생활비를 벌기 힘들었다. 발레 공연이나 호텔 등 다른 곳에서 연주료를 더 준다고 제의해 오면 동료나 제자에게 연주를 맡기고 자신은 '물 좋은'일감을 찾아 자리를 비우는 게 예사였다.

LSO는 개척 정신으로 똘똘 뭉친 악단이다. 월급제가 아니어서 아무리 고참 단원이라도 연주에 참여하지 않으면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단원 전체가 재정적 손익을 분담하고 단원 대표들로 구성된 이사들이 객원 지휘자와 협연자는 물론 수석 지휘자까지 결정한다. 이사장은 부악장(副樂長)인 바이올리니스트 레녹스 매킨지가 맡고 있다. LSO가 BBC 심포니, 런던필, 로열필, 필하모니아 등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줄곧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원동력은 헝그리 정신과 유연성이다. 바비칸 센터가 82년 개관 직후 LSO를 유일한 상주 단체로 맞아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곳에서 90회 연주하는 조건으로 바비칸 센터의 소유주인 런던시가 연간 50만 파운드(약 75억원)를 지원해주고 있다.

90년대 중반 영국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들었을 때도 민간 교향악단 중 유일하게 LSO만 적자를 면했다. 일찍부터 레코딩, 방송 출연, 영화음악 녹음에 눈을 떴고 최근에는 휴대전화 컬러링, 디지털 다운로드 등 신세대 청중을 겨냥한 서비스에도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유료 관객 점유율이 85%를 넘는다.

녹음이나 연주 등 3시간 이상 걸리는 일감이 연간 580회나 된다. 영화음악 녹음만도 연간 10여편. 오전에 영화음악 녹음하고 오후에 공연하는 날도 많다. 강행군이다보니 결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객원 단원을 쓰더라도 소수 엄선된 연주자들만 고정적으로 부른다. 앙상블의 뉘앙스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 공연 메모=지휘 정명훈, 피아노 리윈디. 3월 18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소르그스키'전람회의 그림', 쇼팽'피아노 협주곡 제1번'. 19일 오후 6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말러'교향곡 제5번', 쇼팽'피아노 협주곡 제1번'. 02-518-7343.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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