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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한샘만 문제? 조직 내 갑질 성범죄자 631명 검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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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직장 내에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간음·추행을 하는 '갑질 성범죄'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중앙포토]

직장 내에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간음·추행을 하는 '갑질 성범죄'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중앙포토]

 인테리어 기업 한샘의 여직원이 “입사 3일만에 신입사원 교육담당자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이 문제의 사후 조치를 논의하던 인사팀장이 거짓 진술을 요구하고 성폭행을 시도했다”고 주장면서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 여직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두 사건 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성범죄’일 가능성이 크다.

신보라 의원실 국정감사 자료 #우월적 지위 이용 성범죄 매년 증가 #2012년 341건→2016년 545건 #회식 중 신체접촉, 부적절한 문자 등 #경찰, 지난해부터 TF 구성해 특별단속 #올해 갑질 성범죄자 631명 검거 #폭력예방교육 고위직 참여율 70%대 #고위직 0% 참여 기관 3년째 증가 #

이 같은 업무와 연관된 갑질 성범죄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신보라 의원(자유한국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는 2012년 341건에서 2014년 449건, 2016년 545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2017년 1~8월 370건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산하 A공공기관에서 부서장(전문직 2급)이 부하 여직원들을 추행해 내부 감사를 받았다.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가해자는 2016년 1월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들의 손·어깨·허벅지를 습관적으로 만졌다. 4월 회사 워크숍에서는 피해자가 극구 사양하는데도 신체를 접촉하며 비옷을 입혀주기도 했다. 5월에는 또 다른 기혼 여성 직원에게 ‘사랑해’ 등 불쾌감을 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가해자는 감사에서 신체를 만진 혐의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부인했고 나머지는 "관심의 표현이었다"고 해명했다. 감사 결과는 중징계였다.

지난해 B공공기관에도 전문직 4급에 해당하는 가해자가 회식 후 6급 직원에게 입을 맞추고 허리를 감싸는 등 추행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가해자는 "직장 동료로서 격려 차원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징계위원회는 명백한 성희롱으로 보고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 발생건수 통계. [자료 경찰청]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 발생건수 통계. [자료 경찰청]

이처럼 '고용주-종업원' 관계보다는 상급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간음·추행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고용주가 종업원에 성폭력을 행사한 사건은 2012년 207건에서 2016년 294건으로 약 40% 증가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은 같은 기간 134건에서 251건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올해 1~8월 190건으로 고용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180건)보다 많았다.

경찰청은 지난해 이런 류의 사건이 잇따르자 9~12월 ‘갑질 횡포 근절 TF’를 구성해 특별단속을 실시해 431명을 검거했다. 이 중 90% 가까이가 직장·조직 내 성범죄였다. 나머지는 대학 등 학교와 체육·예술계에서 발생했다. 올해에는 특별단속을 확대해 2~8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자 631명을 검거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 특별단속 결과. [자료 경찰청]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 특별단속 결과. [자료 경찰청]

 한샘의 피해자는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가해자와) 앞으로도 회사에서 볼텐데" "사회생활이 걸려있으니"라고 걱정했다. A공공기관 사건 피해자도 "가해자의 말이 강압적으로 느껴졌고,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참았다"고 진술했다. 조직 내 업무상 상급자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저항을 하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경찰청이 검거한 갑질 성범죄자는 631명에 달한다. 80% 이상이 직장·조직 내에서 발생한 성범죄였다. [중앙포토]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경찰청이 검거한 갑질 성범죄자는 631명에 달한다. 80% 이상이 직장·조직 내에서 발생한 성범죄였다. [중앙포토]

 반면 가해자들은 친분을 내세운다. 한샘의 성폭행 가해자는 "피해자와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공개했다. B공공기관의 성추행 가해자도 "인턴시절 멘토를 맡았던 인연으로 친분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직장 내 상급자들의 성 의식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10일 보도자료를 내고 공공기관의 성희롱 등 폭력예방교육 실시율이 3년 연속 99%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종사자의 교육 참여율은 88.2%라며 폭력예방교육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고위직의 교육 참여는 여전히 70%대에 머물고 있다. 신보라 의원실이 여가부로부터 제출 받은 ‘최근 3년간 공공기관 폭력예방교육 기관장 및 고위직 미참석 기관 현황’에 따르면, 고위직(국가기관 국장급, 공직유관단체 임원급, 대학 전임교수 이상)이 교육을 전혀 듣지 않은 기관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최근 3년간 공공기관 폭력예방교육 기관장·고위직 미참석 현황. [자료 여성가족부]

최근 3년간 공공기관 폭력예방교육 기관장·고위직 미참석 현황. [자료 여성가족부]

 성희롱 교육에 고위직이 미참석한 기관은 2014년 국민안전처 외 65개, 2015년 국립중앙도서관 외 101개,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외 129개로 늘었다. 성폭력 교육의 경우 각각 95개, 145개, 181개였다. 지위가 높을 수록 업무상 위력을 행사할 우려가 커지는데, 고위직 폭력예방교육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신보라 의원은 “한샘 성폭행 사건과 같은 갑질 성범죄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고위직 공무원과 간부들의 성 의식 개선을 위해 여가부는 폭력예방교육의 내실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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