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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마트는 왜 PB를 만드나요 소비자에게 좋은가요

중앙일보

입력

Q: 최근 할인점에서 자체브랜드(PB) 제품을 많이 봤습니다. 기존 상품과 무엇이 다르고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요. 품질 차이는 없을까요.

경기침체 온라인 등으로 유통업 한계 #자체 제작 제품으로 가격 낮추고 #고유 브랜드로 충성 고객 확보 #치열해진 유통 환경의 산물

A: 유통 기업의 성장 한계 극복과 가격 경쟁력 확보가 목표죠.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최근 몇 년 동안 소비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는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 만족도)’입니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구매하려는 합리적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가성비 높은 제품이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PB 유행은 이런 트렌드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선 PB의 뜻부터 보겠습니다. 한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자체 브랜드, 그러니까 프라이빗 브랜드(Private Brand) 외에도, 가게 브랜드(Store Brand), 하우스 브랜드(House Brand), 프라이빗 레이블 브랜드(Private Label Brand) 등으로 불립니다. 대칭되는 개념은 일반 식품회사나 제조사가 만드는 제품이겠죠. 내셔널 브랜드(National Brand), NB라고 부릅니다. 이 글에서는 그냥 일반 브랜드라고 하겠습니다.

요즘 한국 유통업계는 PB에 그야말로 제대로 꽂혔습니다. 90년대부터 조금씩 자체 제작을 하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물론 편의점과 헬스 앤 뷰티(H&B) 매장, 각종 전문점, 고급 호텔까지 개성 있는 PB 만들기에 열심입니다. 가성비 우선주의에 불황, 온·오프라인 유통 경계 소멸, 1인 가구 증가와 같은 여러 사회 경제적 요소들이 혼합된 결과입니다.

한국 첫 PB 제품은 1960년대 등장합니다. 신세계 백화점이 제작한 남성용 와이셔츠를 첫 PB로 칩니다. 그러나 이후 수십년간 한국 유통업계는 자체 브랜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1994년 이마트가 자체 우유를 내놓긴 하지만 2010년 전까지는 PB 불모지였습니다.

유통업체는 자체 제작보다는 점포 수를 빨리 늘려 유통망을 확장하는 데 더욱 신경을 쓰던 시절이니까요. 경제 성장기에는 전국 구석 구석 좋은 목에 있는 매장 수가 곧 유통업체의 경쟁력이었습니다. 최근엔 이런 확장은 정점을 지나 하락세입니다. 2011년 이후 유통업체 구조적인 하락세가 시작돼 6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전국엔 매장이 들어설 수 있는 곳마다 이미 누군가가 깃발을 꽂았습니다. 출산률이 낮아지고 인구가 줄었습니다. 몇 십원, 몇 백원 할인은 더 이상 소비자 유인의 동력이 되질 않습니다. 실시간으로 싼 제품을 찾아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는 채널이 수도 없이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유통 경쟁은 인근 몇 개의 매장이 아닌 전 세계 유통회사와 개인사업자 사이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영토가 넓은 유통기업일수록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지 않으면 쓰러질 수 있습니다. 20~30대 소비자의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1인 가구가 늘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은 내리막길입니다. 그냥 집 근처에서 조금씩 사는 소비층이 늘고 있죠. 유통사로써는 이들의 발길을 되돌려 놓을 할 해법이 절실한 것이죠.

PB가 그 해법으로 떠 올랐습니다. PB 상품은 중간 유통마진이나 광고ㆍ홍보비가 절감돼 가성비가 높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기능만 남겨 놓고 나머지 기능이나 포장 등은 최소화합니다. 제작은 중소 협력업체가 하고 유통업체는 브랜드의 통일성·지향점·적정가격 등을 관리하는 분업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통사가 수년 간 유지해 온 브랜드 이미지를 투영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PB 전성시대는 대형마트 3사의 움직임으로 확인됩니다. 이마트의 PB ‘노브랜드’는 2015년 4월 출시된 이후 연간 500%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같은 회사의 가정간편식(HRM) 피코크는 2013년 출시된 이후 2015년까지 연평균 93% 이상의 신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롯데마트는 ‘초이스 엘’에 이어 최근 최저가가 아닌 ‘최적가'로 승부하겠다며 ‘온리프라이스’ 확장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홈플러스도 간편식 ‘싱글프라이드’라는 PB 브랜드 개발이 활발합니다. 편의점 3사(CU·GS25 ·세븐일레븐)도 각각 PB 브랜드(헤이루·유어스·7셀렉트)를 내놓고 과자와 도시락, 간단한 안주까지 상품수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고가의 PB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PB 상품은 대체로 다른 유통 매장과의 차별화를 위해 만들어집니다. ‘꼭 거기에 가야 살 수 있는 제품’이 많을 수록 충성 고객 확보 가능성도 커지겠죠.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품질을 따지는 소비자까지 다 잡겠다는 뜻이겠죠.
식품과 생활용품을 너머 최근엔 다리미같은 소형 가전제품에서 TV까지 PB 상품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PB 스쿠터가 등장하기도 했으니 다음은 무엇이 될지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PB 제품이 급격하게 늘고 있지만 한국 PB 개발은 이제 막 유년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형마트 3사의 PB 상품은 보유 상품의 5분의 1 정도입니다. 영국과 미국은 통상 대형마트나 슈퍼의 PB 비율이 절반에 달한다고 합니다. 특히 PB 문화가 가장 먼저 발달한 영국의 막스 앤 스펜서의 경우 PB 비중은 100% 입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독일의 할인점인 알디도 상품의 90%를 PB로 채우고 있습니다.

PB 제품은 소비자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가요. 좋은 것일까요. 이론상으로는 유통업체와 소비자의 ‘윈-윈’이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비용구조가 개선되고 제품 원가는 낮아집니다. 물류비와 인건비 절감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이는 소비자 가격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PB 제품은 일반 브랜드의 비해 약 24~29% 저렴한 것으로 봅니다. 소비자가 물건을 싸게 살 기회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얘기죠.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고급 PB가 등장하기 시작했다지만 아직은 ‘미투 제품’이 다수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유명 브랜드에서 이름만 살짝 비튼 PB 과자나 생활용품을 보신 경험이 있을 겁니다. 이런 행태는 제조사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품을 만드는 협력업체에 공평한 수익이 주어지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협력업체는 자칫 ‘가격 후려치기’의 희생양이 될 위험도 있습니다. 중소업체는 자체 개발한 자체 브랜드로 스스로 설 기회를 잃는 것일 수도 있고요.

결국 최근 PB제품이 늘어나는 것은 더욱 치열해진 유통 경쟁이 가져온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B 제품이 늘어가면서 제조사의 위기감이 감지됩니다. 판로가 탄탄한 유통사가 제조의 영역을 파고 들고 있는 형국이니가요. 이렇게 되면 제조업체도 독자적 유통망 확보 등 반격을 모색해야 합니다. 유통업과와 소비재 기업의 경계는 점점 흐릿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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