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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서청원 녹취록 '치킨 게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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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서청원 두 보수 정치인이 해외에서 돌아오자마자 두 사람 간 통화 녹취록 진위를 두고 또다시 정면충돌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 [중앙포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 [중앙포토]

4박 5일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하고 귀국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8일 인천공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녹취록이 있다면 한번 까보라”라며 “협박이나 하는 사람(서청원)하고는 정치 같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방미 중에도 “깜냥도 안 되면서 덤비고 있다”, “정치를 더럽게 배워 수 낮은 협박이나 하고 있다”고 했었다.
그는 이날 공항에서 “9월 3일 서 의원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공개했다. 그리곤 “1시간 30분 듣기만 했다. 듣는 도중에 얼핏 그 이야기(녹취록)를 하면서 협박을 하더라. 그래서 그날 내가 느꼈다. 이런 사람하고는 정치 같이하기 어렵겠다”라고 했다. 이어 “8선이나 되는 분이 어떻게 그리 유치한 짓을 하는가. 새카만 후배 도와주진 못할망정 협박이나 하다니, 해 볼 테면 해보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4박 5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28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접견실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4박 5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28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접견실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내가 (성완종 자금 수수 사건이란) ‘올무’에 걸려 정말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을 때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나를 얽어 넣어야 ‘친박’이 누명을 벗는다고 (그렇게) 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서청원 의원 측은 “홍 대표는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함부로 이야기하는 탁월한 기술자”라며 “곧 진실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고 맞섰다. 이에 앞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해외 국정감사를 마치고 26일 귀국한 서 의원은 인천공항에서 취재진에게 “그 양반(홍준표)이 내일모레 온다니까, 오면 어차피 내가 한 번 정확한 입장을, 팩트를 말할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두 사람의 공방 가운데 선 인물이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다. 서 의원과 가까운 것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윤 부회장은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아 홍 대표에게 그 돈을 건넨 혐의로 2015년 4월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홍 대표와 서 의원이 윤 부회장 문제로 통화했다는 건 두 사람 공히 인정하는 사실이다. 엇갈리는 건 구체적인 통화 내용, 그리고 이 녹취록이 존재하는가 여부다.

26일 국회 외교통일위 해외 국감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귀국한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 [중앙포토]

26일 국회 외교통일위 해외 국감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귀국한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 [중앙포토]

서 의원은 지난 22일 “2015년 홍 대표가 수사 과정에서 협조를 요청했다”며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는 제가 진실의 증거를 내겠다”고 주장했다. 녹취록 등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자 홍 대표는 “수사 당시 서 의원에게 전화한 건 맞지만, (진술 번복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윤씨는 서 대표 사람이 아니냐. 그런데 왜 나를 물고 들어가느냐. 자제시키라’고 요청했다”고 반박했다.

결국 두 사람의 대결은 녹취록에 모아지게 됐다. 서 의원으론 녹취록을 내놓지 못하게 되면 ‘공갈포’만 내질렀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녹취록이 실재하고 또 그 안에 홍 대표의 뇌물 수수 의혹을 입증할 만한 내용이 담겼다면 홍 대표로선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또한 둘의 대결 결과는 곧바로 친박 청산 및 보수통합 문제로 이어질 전망이다. 녹취록이 보수 재편 판도라의 상자가 된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박근혜 자동출당’ 카드 꺼낼 듯=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 여부도 이슈다. 당초 20일 윤리위원회에서 ‘박근혜 자진탈당’을 권고했을 때만 해도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는 손쉽게 마무리 될 것으로 예견됐다. 하지만 최고위 의결을 앞두고 9명 위원 간에 찬성-반대가 팽팽하다는 전언이 잇따르면서 분위기가 미묘해지고 있다. 자칫 ‘박근혜 출당’이 어긋날 경우 바른정당과의 보수 통합은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홍준표 리더십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홍 대표 측은 최고위에 출당 안건을 아예 상정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른바 ‘박근혜 자동출당’ 카드다. 근거는 “탈당 권유 징계를 받은 사람은 10일 이내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위원회 의결 없이 바로 제명 처분한다”는 윤리위 규정 21조 3항이다. 홍 대표 측 인사는 “홍 대표가 앞서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를 ‘최고위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한 것은 의결하겠다는 게 아니라 보고 사항이라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친박계는 “전형적인 견강부회”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박의 논거는 “당원에 대한 제명은 위원회 의결 후 최고위 의결을 거쳐 확정한다”는 윤리위 21조 2항이다. 실제 표 대결이 아닌 안건 상정 여부를 두고서도 양측이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이다. 최고위는 다음달 2일 혹은 3일 열릴 예정이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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