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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실험, 갈등 해소 새 모델 되려면 면밀한 복기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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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07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 검증 나서는 김석호 위원장

김석호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은 24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한 달간 신고리 5·6호 공론화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복기하고 평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경빈 기자

김석호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은 24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한 달간 신고리 5·6호 공론화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복기하고 평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경빈 기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이 20일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이 20일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작은 대한민국’으로 불러도 좋을 시민 대표이자 우리 시대의 현자 시민참여단 471명은 감동 그 자체였다.”

참여단 선발 적절성부터 시작 #녹취록·e메일까지 핀셋 검증 #질의응답 객관·공정성 따질 것 #시민 목소리 정책에 반영 안 되는 #대의제 한계 보완할 가능성 생겨 #공론화 남발 곤란, 11월 결과 나와

지난 20일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은 ‘원전 건설 재개’ 권고안을 발표하며 시민참여단을 이렇게 평가했다. 471명은 합숙토론과 공론조사 등 숙의 과정을 거쳐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 재개(59.5%대 40.5%)로 결론을 내렸다. 원전과 같은 찬반이 첨예한 문제를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3자, 배심원 격인 시민들에게 판단을 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부의 권고안 수용으로 위원회의 공식적인 활동은 끝났지만 ‘한국형 민주주의’ 모델을 찾는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공론화위원회의 또 다른 축인 공론화 검증위원회(위원장 김석호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가 앞으로 한 달여간 공론화 전 과정을 복기하는 작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앞서 24일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공론조사 표준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검증위원회의 보고서가 바탕이 될 전망이다.

검증위원회는 법·제도(박형준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조사(박민규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 숙의(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소통(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4가지 분과에 걸쳐 공론화 과정을 평가한다. 김 소장은 “공론화위원회 지원단이 시민참여단에 발송한 e메일 하나하나까지 요청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시민참여단 모델은 해외에도 사례가 없다. 갈등이 잦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모델로 자리 잡으려면 면밀한 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증위원회 교수들은 지역토론회와 합숙토론회 등에 참여해 관찰하고 자료 수집을 해 왔다고 한다. 지난 24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서 김 소장을 만났다.

공론화 기간 동안 언론 접촉을 자제한 이유는.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언론은 물론 공론화위원회와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위원회는 출범 때부터 자격과 진정성 시비가 있었다. 저를 비롯해 4개 분과 교수들의 공통된 생각도 위원회가 답이 정해진, 원하는 검증만 받겠다는 조짐이 보이면 언제든지 사퇴한다는 것이었다. 검증에 대해 양해각서만 체결하고 정식 사업 계약은 결과가 나온 이후로 미뤘다. 그 정도로 엄중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공론화 과정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아직 검증 전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씀드리는 건 조심스럽다. 현재로선 대과 없이 잘 치렀다는 분위기이지만 엄밀히 말해 절반의 성공이다. 이번 공론화는 공론조사라기보다 대표성을 가진 시민참여단의 조사였다. 일반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는 공론조사는 통일의 모델, 경제 민주화 등 국민에게 익숙한 주제여야 한다. 신고리 원전은 공정이 30%가량 진행된 주제에 관한 거였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때문에 일반 국민은 아직도 세부적인 내용을 잘 모른다. 시민참여단과 국민 사이에 괴리가 있다. 참여단이 토론을 하는 과정이 공영방송, 포털 생중계 등으로 좀 더 많이 오픈됐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번 공론조사의 의미는.
“공론조사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한국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이번 시도가 한국의 시민참여형 조사에 대한 실험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 정치의 한계랄까, 대의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엘리트 중심주의와 시민의 목소리가 정책 결정 과정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시민들은 매일 광화문을 나갈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고 한국의 실질적인 참권력을 만들어 가는 방법으로 시민참여형 조사를 꼼꼼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자료를 근거로 평가하나.
“위원회에 요청한 자료 종류만 100여 가지가 넘는다. 문서로 따지면 몇 톤 트럭이 나올 것 같다. 숙의 과정 전반에 대해 평가한다. 500명의 시민참여단 선발은 적절했는지부터 시작한다. 지원단이 모집 단계에서 발송한 e메일, 참여단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이 유지됐는지가 중요하다. 최종 2박3일 합숙토론에서 471명의 참여단이 48개 조로 나눠 토론을 했는데 저희가 그 모습도 관찰했다. 토론을 돕는 모더레이터의 역할은 적절했는지도 평가한다. 위원회에 48개 조의 토론 과정에 대한 모든 녹취록을 요구했다.”
검증 내용은 어떤 것인가.
“이번 공론화는 ‘한국에서 대표성 있는 표본(시민참여단)을 추출하고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시민을 토론의 과정과 학습의 과정을 통해 정보에 노출시킴으로써 양질의 여론을 측정하고자 한 시도’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가장 중요한 건 표본의 대표성이 처음과 끝까지 유지됐느냐다. 편향된 집단이 추출됐다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처음 9만 명에서 2만여 명, 500명, 최종적으로 ‘471명의 현자’라고 평가받는 시민참여단으로 추리기까지 혹시나 특정 집단으로의 쏠림이 있었는지를 검토한다. 조사설계·조사준비·자료수집에 이르는 과정, 1~4차 공론조사 결과를 얻는 과정과 토론은 공정하게 진행됐는가, 참여단에 제공된 정보는 정확했는가, 토론의 세팅은 공정하고 투명했는가 등도 평가한다.”
공론화위원회 구성의 정치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원전을 중단할지 말지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얼마든지 하려면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공론화를 시도한 것도 정치적 목적이 과연 없을까. 그걸 아는 상태에서도 시민민주주의, 공론장을 통한 민주주의 모델을 시도한 그 자체를 높이 사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목적은 저희의 판단 대상이 아니고 법과 제도적 측면, 공론조사 절차의 합법성과 민주성이 얼마나 확보됐는지, 성공적인 갈등 해결 기제로서 공론조사가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그런 것을 보겠다는 거다. 대안에서 공론화위원회의 구성, 지원단 운영의 설립에 관한 법적 근거, 절차적 적법성에 대한 부분도 포함시킬 계획이다.”
찬반이 제공하는 정보의 양과 질이 차이가 났다는 지적에 대해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이든 에너지 관련 연구원이든 국책연구기관에 정보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공사 재개 쪽이었다. 국민의 의견은 양쪽으로 팽팽하게 갈려 있는데 전문가들은 쏠림현상이 있다. 양측이 이성과 감성을 적절하게 활용해 설득했지만 한쪽(재개 측)은 40년간 쌓아 놓은 경험과 자료가 있었다. 다른 쪽은 이 자료에 의존해 2차 가공한 자료로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보를 기본적으로 공유하면서 양측이 함께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가지고 토론을 한다든지 보완이 필요했을 수 있다. 숙의와 소통 분과에서 이 부분을 다룰 텐데 소통의 주체는 일반 국민만이 아니라 찬반 양측의 소통도 포함된다. 이 소통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건설적으로 진행됐는지도 평가할 것이다.”
다른 이슈들도 공론화해야 한다는 말이 많다.
“공론조사를 너무 남발하면 안 된다. 이번 과정에서 사람들이 관심 있게 지켜본 건 결과를 수용하는 정부의 태도였다. 민주적인 룰에 따라 서로 경쟁하는 양측이 있었고 경쟁에서 한쪽이 우세했고, 그들이 주장한 바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수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긍정적으로 봤다. 앞서 말했듯 ‘탈핵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가 이뤄진 건 아니었다. 3개월이라는 시기가 짧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적합한 모델을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그 지점이 중요한 것이다. 신중하게 분석한 후 활용해야 한다.”
한국형 민주주의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번 공론화 과정은 한국형 민주주의 모델을 찾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이해당사자, 시민, 언론,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일종의 정치 과정이었다. 수집된 모든 자료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다. 그 사료를 미리 들여다볼 수 있는 것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한다. 정부는 검증위원회가 요구하는 자료를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갈등 해결, 사회 통합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작업이다. 과거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착착 실행해 만들어 가는 패러다임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함께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정책적으로 면밀하게 평가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결과는 언제쯤 나오나.
“11월 말께 나온다. 최종 백서는 12월 14일 발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론화위원회 활동백서에 검증 내용이 포함된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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