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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 “혁신성장 위해 자본시장서 벤처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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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증권업 발전 주요 과제

증권업 발전 주요 과제

“혁신성장을 위해서도 증권업 규제 완화는 필요합니다.”

금투협회장 ‘30대 핵심과제’ 발표 #투자처 못 찾는 유동자금 1000조원 #자본시장에 끌어들일 방안 필요 #‘49인 룰’ 완화하면 사모펀드 활성화 #IPO 늘리려면 ‘5% 룰’ 개정 필요

황영기(사진) 금융투자협회장은 23일 ‘증권업(금융투자업) 균형발전을 위한 30대 핵심과제’를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은 정부와 대기업 주도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혁신·창업 기업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성장 과정에서 자금 부족으로 경영난을 겪는다. 지난 19일 ‘혁신성장 현장 간담회’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기업 혁신을 위해선 성장자금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라며 “민간 주도로 자금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는 모험이다.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공존한다. 이런 ‘모험자본’은 금융투자업계가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 황 회장의 생각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못 찾는 1000조원가량의 단기 유동자금을 자본시장에 끌어들여 혁신기업으로 흘러드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황 회장은 “증권회사가 혁신·신성장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활로’가 돼야 한다”며 “대출을 통한 일시적 제공에 그치지 않고 성장 단계별로 맞춤형 자금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이를 위해 30대 과제를 제시하며 금융투자업에 대한 규제를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공모와 사모펀드의 판단 기준인 ‘49인 룰’을 완화해야 한다고 봤다.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 판매되는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운용자산에 대한 규제가 많지 않다. 하지만 현재 49명 이하에게 투자를 권유한 경우에만 사모펀드로 인정된다. 공·사모펀드 구분 기준을 ‘투자를 권유한 대상 수’에서 ‘실제 청약자 수’로 바꿔 사모펀드를 늘리자는 것이 황 회장의 주장이다.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M&A 가격을 자율 산정하자고도 했다. 미국이나 일본은 M&A를 할 때 가격을 이사회 결정에 따라 자유롭게 정한다. 그러나 국내에선 자본시장법에 근거한 ‘합병가액 비율’로만 거래할 수 있다. 황 회장은 “이사회가 주주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합병 조건·비율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부당한 합병에 동의할 경우 손해배상소송 등으로 처벌하면 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기업공개(IPO)를 늘리기 위해 증권사를 규제하는 ‘5% 룰’도 개정하자고 제안했다. 국내 증권사는 자사가 5% 이상 지분을 가진 비상장기업에 대해 독자적으로 IPO를 주관할 수 없다. 해외 투자은행(IB)은 유망기업 지분에 30~50%를 투자한 뒤 회사가 성장하면 나스닥에 상장시키고 투자금을 회수한다. 황 회장은 “미국은 증권사가 부정한 방법으로 기업 주가를 높여 상장한 게 밝혀지면 최고경영자가 10년이든 100년이든 징역을 살고 회사가 망할 정도로 처벌한다”며 “징벌이 무서워 (부정 상장)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IPO 자율권을 확대해 투자를 늘리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부정을 방지하자는 주장이다.

일반 서민의 가계 자산을 늘리기 위한 방안도 내놨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내 집 마련 ISA’, ‘학자금 마련 ISA’ 등의 목적형 ISA로 특화한다는 계획이다. 기업이 신탁기관을 설립해 기금을 공격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황 회장은 “기금형 퇴직연금 준비는 마무리 단계”라며 “11월 국회에서 법안만 통과되면 내년에라도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핵심과제’는 황 회장만의 생각은 아니다. 금융투자협회가 해외 IB 전문가와 국내 자본시장업계 관계자와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1년 가까이 연구한 것이다. 황 회장은 올해 초 “은행에 밀려 역할이 축소된 증권사가 글로벌 대형 IB로 성장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겠다는 복안이다.

물론 넘어야할 산은 아직 많다. 과제 대부분은 법과 시행령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황 회장의 제안은 찬반 논란이 첨예한 것이 많아 국회와 정부의 문턱을 넘는 것이 쉽지 않다. 황 회장은 “핵심과제를 공론의 장에 올렸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국 등과 협의해 고칠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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