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회, 마침내 페이스북·트위터 규제 첫발 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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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관련 단체가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3000여 건의 광고를 집행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중앙포토]

러시아 관련 단체가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3000여 건의 광고를 집행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중앙포토]

페이스북, 트위터 등 세계 굴지의 소셜미디어를 다수 배출한 미국에서 마침내 관련 업계에 규제의 칼을 뽑아 들었다.

존 매케인 등 미 상원의원 3명, #소셜미디어 정치 광고를 규제하는 #'정직한 광고법' 법안 19일 발의 #광고 규제 엄격한 기존 매체에 비해 #소셜미디어는 사실상 규제 무풍지대 #국내서도 온라인 광고 규제 필요성 제기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애리조나)과 민주당의 에이미 클로버샤(미네소타)·마크 워너(버지니아) 상원의원은 19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의 정치적 광고를 규제하는 초당적 법안 '정직한 광고법(Honest Ads Act)'을 의회에 상정한다고 미 의회전문지 더힐이 보도했다.

이 법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업체는 정치적 광고에 대해 광고주가 누구이고 광고비로 얼마를 지불했는지, 광고의 주요 대상은 누구이며 조회 수가 몇 회인지 공개해야 한다. 또 광고주로부터 받은 광고 자료의 디지털 사본을 보관하고 그 광고가 게재된 일시를 기록해야 하며, 해당 광고가 직·간접적으로 외국인에 의한 것인지 확인하려는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법안 상정을 주도한 워너는 보도자료를 통해 "러시아는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에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등 온라인 광고 플랫폼에 정치적 광고를 게재했다. 그러나 최신 기술에 부합하지 않는 낡은 법 때문에 이 광고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누가 이 광고를 의뢰했는지가 미 국민에게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며 "정직한 광고법은 온라인 플랫폼에 게재되는 정치적 광고에 대해 TV·라디오 등 방송과 동일한 규제를 부과함으로써 해외 세력의 선거 조작 시도를 방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AFP=연합뉴스]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AFP=연합뉴스]

이번 법안은 최근 미 의회의 조사 과정에서 러시아가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여론을 조작할 의도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구글에 정치적 광고를 게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나왔다.

지난달 29일 트위터 측이 미 의회 간담회에 출석해 지난해 러시아 관영방송 러시아투데이 등으로부터 27만4100달러(약 3억원) 규모의 광고를 집행했다고 시인한 데 이어 페이스북도 지난 2일 러시아 관련 단체가 지난해 게재한 정치 광고 3000여 건의 자료를 의회에 제출했다. 구글에서도 내부 조사 결과 러시아 관련 집단이 4700달러 규모의 광고를 낸 것이 확인됐다. 이 광고들은 대체로 성소수자, 인종, 이민, 총기 등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주제들을 부각하면서 당시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편드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TV·라디오 방송의 정치적 광고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지만 페이스북 등 온라인 소셜미디어는 사실상 규제 무풍지대였다. 때문에 미국에선 소셜미디어 업체들이 광고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어들이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매출 276억 달러를 기록한 페이스북의 경우 매출의 97%가 광고에서 나왔다.

소셜미디어의 무분별한 광고를 우려하는 국가는 미국 뿐만이 아니다. 독일 의회는 지난 7월 가짜 뉴스나 테러를 조장하는 게시물을 방치하는 소셜미디어 기업에 최고 5000만 유로(약 650억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명 '페이스북 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영국 정부도 지난 11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업체들에 온라인 환경 개선을 위한 기부금 출연을 촉구했으며, 향후 관련 규제를 입법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남성의 성기 확대와 성기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는 남성 성인용품 광고영상. [페이스북 캡처]

남성의 성기 확대와 성기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는 남성 성인용품 광고영상. [페이스북 캡처]

한국에도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포털의 광고 관련 규제가 전무해 무분별한 허위·과장 광고로 인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주류·성인용품 등 성인을 겨냥한 광고에 미성년자가 무차별로 노출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증권사들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지난해 매출은 약 3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주요 방송·신문사 전체의 광고 매출(약 2조8000억원)을 합친 것보다도 많은 액수임에도 네이버 등 포털과 소셜미디어는 규제를 거의 받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업체의 광고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태 의원(자유한국당)은 통신사나 방송사에 비해 규제 강도가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인터넷 포털의 규제와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법안(일명 뉴노멀법)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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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감에서도 온라인 광고 규제 필요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대상 국정감사에서는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등이 모바일 광고 규제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위법 사항이 있으면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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