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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세상] “제 자식을 죄책감 없이 때리는 이들 … 그 눈빛이 마치 악마의 것처럼 섬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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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17일 서울 경리단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남 궁인 이화여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의사.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지난 17일 서울 경리단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남 궁인 이화여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의사.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2013년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생후 2개월 된 아이가 실려 온 적이 있어요. 친아버지가 지속적으로 때린 아이였는데, 온몸의 뼈가 다 골절된 상태였죠. 이런 아이들은 주사를 찔러도 가만히 있어요. 이미 저항할 수 없는 몸이 된 거죠. 수술로 생명을 구하긴 했지만, 사후 치료보다 예방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비극들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어요.”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 의사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 1호 서포터 #“퀴즈 우승상금, 펀딩 모금 기부할 것”

응급실 현장 모습을 에세이 형식으로 담은 책 『만약은 없다』(2016)와 『지독한 하루』(2017)를 펴낸 남궁인(34) 이화여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의사(임상 조교수)는 ‘글 쓰는 의사’가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17일 서울 경리단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글쓰기와 의술 활동이 사람을 향한다는 점에서 보면 같은 점이 많다. 특히 말 못하는 아동들의 고통은 의술 활동보다 글을 써 알리는 일이 어찌 보면 더욱 절실한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부터 응급실 환자들의 사연과 의료진의 고뇌 등을 담은 글을 페이스북과 스토리 펀딩 사이트에 올리고 있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고교 재학 시절 국어국문학과 진학을 꿈꿨다고 했다. 그는 “날것으로 들어오는 사회의 이야기를 기록해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수능 점수가 높게 나와 의대를 가게 됐지만, 사회와 가장 밀접한 곳에서 일하고 싶어 비인기 학과인 응급의학과에 자원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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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응급실은 항상 비극의 연속이지만, 특히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이와 그 부모들의 모습을 볼 때가 가장 가슴이 아프다. ‘본인이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며 울부짖는 부모들을 볼 때면 나도 남몰래 울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의 폭력으로 응급실에 실려 오는 아이를 볼 땐, 그 어느 때보다 분노가 솟는다”고 했다. “아동학대는 부모가 스스로 자신의 자식을 다치게 만든 거다. 그런데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그들의 눈빛을 보면 정말 악마를 보는 것같이 섬뜩하다. 이런 부모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덧붙였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는 1만8573건 발생했다. 사망으로 이어진 경우는 36건이다. 그는 “이런 숫자들이 아무리 알려져도, 대개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것 같았다. 아동학대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선 숫자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역할을 응급실 의사인 내가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책에는 아동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그는 국제 구호·개발 비영리단체(NPO)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8월 시작한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인 ‘한 아이’에 1호 서포터로 참여했다. “서포터 제안이 왔을 때, 흔쾌히 수락한 수준이 아니라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했다”는 그는 “올해 초 지상파 방송 퀴즈 경연 대회에서 우승해 받은 상금과, 현재 개인적으로 진행 중인 스토리 펀딩 모금 중 일부를 아동학대 방지 사업에 기부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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