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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일간 도발 멈춘 북, 미ㆍ중ㆍ러와 눈치게임?…최선희 러시아 파견 남북, 북미 1.5트랙 위기 반전 기회될까

중앙일보

입력

올해 들어 6차 핵실험과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긴장을 불러온 북한의 행보가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15일 미사일(화성-12형) 발사 이후 34일 동안 추가도발을 중단한 채 미·중·러와 접촉면을 늘리고 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 20여일 만에 러시아 방문 #19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비확산 회의에 '민간인' 신분 참석 #러시아가 깐 북미 간접 대화의 장 접촉 결과 주목 #북한은 소원해진 중국에 당대회 축전도. #추가도발 위한 명분 쌓기, 주변국 분위기 살피기 일수도

지난달 말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올레그 부르미스트로프 러시아 외무부 한반도 담당 특임 대사와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던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아메리카(북미) 국장이 20여일 만에 다시 모스크바를 찾았다. 북미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의 잇따른 러시아 방문은 다소 의외라는 차원이다.
정부 당국자는 “최선희 국장이 17일 베이징을 거쳐 러시아에 도착했다”며 “이번에는 러시아 외무성이 주관하는 1.5트랙(반관반민) 회의에 참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외무성 산하 미국연구소장 자격, 즉 민간인 자격의 방문이란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날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의 VIP 및 외교관 전용통로가 아닌 일반통로를 이용, 입국심사를 받았다. 외교 소식통은 “당과 정부의 통제가 이뤄지는 북한에서 개인 신분으로 국제회의에 참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도 공식접촉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외교관 여권이 아닌 일반 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17일(현지시간) 러시아 외무성이 마련한 비확산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최 국장은 민간인 신분을 강조하기 위해 외교관 전용통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21일 북한 외무성 산하 미국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토론할 예정이며. 이 시간 외에 웬디 셔먼 전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 등과 접촉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이 17일(현지시간) 러시아 외무성이 마련한 비확산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최 국장은 민간인 신분을 강조하기 위해 외교관 전용통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21일 북한 외무성 산하 미국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토론할 예정이며. 이 시간 외에 웬디 셔먼 전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 등과 접촉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19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이번 회의에서 최 국장은 21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예정된 비확산회의의 ‘동북아 안보’ 세션과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다자외교’ 세션에서 토론자로 직접 나설 계획이다. 최 국장은 이 자리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인해 핵을 개발했고, 앞으로 핵무기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는 기존 북한의 입장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메시지에도 그의 러시아 행이 주목받는 건 이번 회의에서 북미 간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군축담당 특보, 로버트 칼린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 북한정보분석관 등 미국 전직 관료들이 이번 회의에 참석한다. 미국 참석자들은 전직(前職)이지만 미 행정부에 자문이나 정책 조언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선희가 이들을 만나 협의할 경우 북·미 간접접촉이 되는 셈이다. 지난달 말 렉스 틸러슨 국무 장관이 언급한 2~3개 채널의 하나일 수 있다.

한반도에 영향력 강화를 시도하는 러시아도 외무부 영빈관에서 환영만찬을 계획할 정도로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북한과 미국의 전·현직 당국자들의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가 이 회의에 당국자들을 파견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이와 함께 최근 소원해진 중국에도 18일 개막한 당 대회 축하전문을 조선노동당 중앙위 명의로 보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전했다. 북한은 축전에서 “중국공산당 제19차대회를 열렬히 축하하며 귀 당의 전체 당원들과 중국인민에게 따뜻한 인사를 보낸다. 제19차 대회가 원만한 성과를 거두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고 했다. 지난해보다 축전의 길이가 다소 짧아졌지만 최근 소원해진 양국 관계를 고려하면 이번 축전이 분위기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당 대회에서 향후 5년간 중국의 정책방향을 결정하고, 시진핑 주석의 권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불만을 표출하며 그냥 넘기기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국제관계에서 ‘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는 말을 고려하면 당분간 양국의 소원한 관계가 이어질 수는 있겠지만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중국과 북한이 언제까지 냉랭한 분위기를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고, 북한이 먼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북한은 미국과의 간접 접촉과 동시에 중국을 향해서도 러브콜을 보내는 모양새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북한의 움직임이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질 지엔 유보적인 시각이 많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 한·미 해군이 연합훈련을 하고 있고, 여전히 미국의 군사적 옵션이 살아 있다”며 “북한이 이에 반발할 가능성이 큰 만큼 최근 북한의 행보가 추가도발을 위한 명분 쌓기 인지 향후 북미 협상과 관련한 주변국들의 간 보기인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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