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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원전 의리주 게임’의 마지막 주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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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들에게 최근 유행하는 ‘의리주 게임’에 대해 들었다. 큰 사발 같은 그릇에 술을 가득 담고(때로는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서) 여러 명이 돌아가며 나눠 마시는 게임이다. 앞에서 마시는 사람이 많이 마셔 주면 뒷사람은 편해지고, 그 반대면 뒷사람은 죽는다. 한마디로 폭탄 돌리기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서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n분의 1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마셔 줘야 타인이 편해지니, 그 이름처럼 의리와 책임감을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게임이다. 물론 최악의 경우는 서로 의리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이들끼리 마지막 사람에게 모두 떠넘겨 마지막 주자를 죽이는 결과일 것이다.

공론화위는 제안·권고라 하지만 #정부가 그 결정 따르겠다고 하니 #서로 책임 피할 명분만 찾고 있다 #마치 ‘의리주 폭탄 돌리기’ 보는 듯 #최종 피해자는 우리 자녀 아닐까

재미는 있겠지만 이런 무식하고 다소 폭력적일 수 있는 게임이 대학생들에게 유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잠깐 고민해 봤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어른들에게서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의리주’ ‘폭탄 돌리기’가 만연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고리원전 5, 6호기 공론화위원회’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선언하며 한참 진행 중이던 신고리원전 5, 6호기의 공사를 중단하고, 그 공사 재개 여부를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하고 있다.

공론화 과정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공공정책을 이해관계자, 전문가, 일반 시민이 참여해 숙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방법이라고 소개됐다. 우선 일반 시민 2만 명을 표본으로 뽑아 숙의 과정에 참여의사가 있는 500명을 추출, 그 500명이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청취하고 토론해 이들의 최종 의견으로 정책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과정이 진행돼 이제 20일 최종 권고안을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공론화 과정은 민주적 의견 수렴, 능동적 시민 참여, 정보와 지식에 근거한 숙의 절차, 사회적 합의 도출 등 각종 미사여구로 설명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얻는 정책 결정이 일반적인 정부 결정에 비해 더 나을 것이라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그 500명이 공식적인 정부의 역할을 대신할 근거, 5000만 국민 중 거의 무작위로 추출된 단 500명의 토론이 왜 더 민주적이고 능동적인지, 그 결정이 사회적 합의가 되는 논리도 명확하지 않다.

허태균칼럼

허태균칼럼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일반 시민 500명이 몇 번의 공청회나 1박2일 합숙을 통해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탈원전이 만만한 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한 전력 수급과 비용을 넘어 산업 전체의 경쟁력, 미래 에너지산업 전반의 발전 가능성, 환경 등의 주제들은 그 지적 난도가 최상급이다. 수많은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 시민이 전문가에 비해 정보 처리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은 반복 검증돼 왔다.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처리할 지식구조(schema) 없이 몇 가지 단편적 정보에 의해 편향되는 현상은 보통 비전문가에게 더 흔하게 일어난다. 그런 현상은 주제가 어려울수록, 처리할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더 강해지는 경향도 있다. 물론 원전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들에 비해 일반 시민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익이 없다는 사실이 그 결정에 대한 신뢰(trustworthiness)를 높여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 결정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지, 결코 실제로 나은 결정을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미 거의 반반으로 갈린 전 국민의 여론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중립적인 국민도 거의 없다. 스스로 그렇게 착각할 뿐이지.

그 결정의 정당성·합리성 문제에 더해,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결정된 정책의 책임소재 또한 명확하지 않다. 공사 재개든 탈원전이든, 그 방향이 무엇이건 공론화를 통해 정해진 정책이 먼 훗날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지나? 공론화위원회와 그 구성원들, 그 능동적인 500명, 숙의 과정 참여를 거부한 수동적 1만9500명? 아니면 그 위원회의 결정을 따른 정부? 그냥 구경하고 있었던 국민? 꼭 추궁이나 처벌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누구의 책임인지는 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공론화위원회는 자신들의 역할이 결정이 아니라 제안 정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는 계속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한다. 그러니 공론화위원회는 웬만하면 판단을 피할 명분을 찾는다. 많은 국민에게 그 계산 원리도 생소한 ‘통계적 유의미성’까지 들고 나왔다. 거의 ‘의리주 폭탄 돌리기’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문제는 그 과정의 어느 누구도 술을 마실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왠지 그대로 남은 술을 모두 마시고 장렬히 전사할 마지막 주자는 우리의 자녀가 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