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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4대강 vs 탈원전·전술핵… 前·現 정부 겨냥 ‘반반 국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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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호 07면

막 오른 문재인 정부 첫 국정감사

문재인 정부 첫 국정감사가 지난 12일 시작됐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야 3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5개월간의 인사 난맥과 안보 무능을 현미경 검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정부·여당은 이번 국감의 핵심을 적폐청산으로 규정짓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정조준하며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이다.

문재인·박근혜 정부 동시 검증 #與 선제 공격에 野 강하게 맞불 #적폐 논쟁에 민생 실종 우려도

국정감사는 일반적으로 야당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지만 올해는 기류가 사뭇 다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방어에 치중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선제 공격에 나서면서다. 현 정부가 전직 대통령이 탄핵된 뒤 조기 대선을 통해 들어선 데다 국정 지지도(지난 13일 한국갤럽, 73%)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인데 힘입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감장 달군 ‘세월호 보고 조작’ 논란

국감 첫날부터 청와대는 매머드급 이슈를 던졌다. 지난 12일 오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첫 보고 시점을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사고 당일 오전 9시30분에서 오전 10시로 보고 시간을 30분 늦춰 박 전 대통령이 최초 지시를 내린 시점(오전 10시15분)과의 간격을 줄였다는 주장이다. 이는 마침 다음날인 지난 13일 박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 연장 여부가 결정될 예정인 것과 맞물려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은 곧장 국회 국감장으로 확산됐다. 지난 13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국감에서 박완주 민주당 의원은 “세월호 7시간이 아니라 7시간30분이 된 데 대해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며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보수 야당은 “청와대 발표 자체에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양수 한국당 의원은 “임 비서실장이 본인의 추측만으로 브리핑을 한 것”이라며 “비서실장은 입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정치적 행동을 한 것을 보면 가볍고 경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따져 물었다. 발표 시기를 두고도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 결정을 앞두고 여론전을 벌인 것”(정용기 한국당 원내대변인)이라고 주장했다. 발표 다음날인 13일 법원은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을 6개월 연장했다.

농해수위 국감의 종착역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2기가 제대로 출범할 수 있을 것이냐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2기 조사위에 1기보다 한층 강화된 법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한국당은 “이미 여야 합의로 구성된 선체조사위 업무와도 겹치는 데다 정치 공방의 장으로 활용돼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이번 국감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12일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한 국감에서도 여야는 정면 충돌했다. 야당은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 비용이 46% 급증하고 원전 수출길이 막히는 등 국가적 손실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유섭 한국당 의원은 “우리는 원전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며 “(탈원전은) 김연아 선수에게 피겨 하지 말고 쇼트트랙 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 산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목표 아래 탈원전 로드맵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적폐청산” 대 “新적폐청산” 기싸움

여야의 입장차가 가장 극명한 분야 중 하나인 안보 정책도 국감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보수 야당은 문재인 정부를 ‘안보 무능 정부’로 규정하고 총공세를 펴겠다는 자세다. 외교통일위와 국방위 국감이 주된 전장이다. 전술핵 재배치와 군 복무 기간 단축 문제, 대북 이슈에서 우리나라가 소외되고 있다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등이 도마에 올랐다. 코리아 패싱에 대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우리는 한반도의 직접 당사자”라며 “우리가 패싱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이 단독으로 (전쟁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방송통신위를 대상으로 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국감은 파행 직전까지 치달을 만큼 살얼음판의 연속이었다. 공영방송 정상화냐, 집권여당의 방송 장악 시도냐를 둘러싼 여야의 첨예한 대립 탓이다. 강효상 한국당 의원은 “KBS와 MBC 등 양대 방송의 파업은 언론노조가 정권의 홍위병을 맡아 무력시위를 벌이고 뒤에서는 정권 실세들이 개입해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며 “이런 것이야말로 적폐 중의 악성 적폐”라고 주장했다. MBC 기자 출신인 김성수 민주당 의원은 MBC 경영진의 부당노동 행위를 열거하다 울컥해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기자와 PD, 아나운서들에게 스케이트장을 관리시키고 영업사원을 맡게 했는데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진 곳이 지난 9년간의 공영방송”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토교통위 국감장에선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사업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민주당은 4대 강 사업을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적폐 사업으로 규정하고 공세에 나섰다. 4대 강 보 개설 이후 수질 오염이 악화된 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4대 강 사업의 감춰진 실체를 규명해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학재 바른정당 의원은 “4대 강 사업은 역사이자 그 자체로 자산”이라며 “4대 강을 수차례 다녀봤는데 물을 가둔 게 본질이 아니고 지류지천의 오염원 유입이 문제”라고 반박했다.

오는 31일까지 20일간 진행되는 올해 국감은 애초부터 ‘반반 국감’이 될 거란 우려가 적잖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밖에 안 됐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모두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국감의 목표를 지난 보수 정권의 적폐청산으로 잡은 데 비해 보수 야당은 현 정부를 ‘신(新)적폐’,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원조 적폐’로 규정하며 맞서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역대 국감에서 이렇게 여러 정부의 정책이 한꺼번에 다뤄진 적이 없었다”며 “무슨 비판을 하든 ‘너나 잘해’라는 식으로 대립만 하다 보면 민생을 위한 생산적인 논의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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