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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 흉기’ 된 타워크레인…수입ㆍ설치ㆍ운행 모두 부실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의정부시의 아파트 공사장에서 10일 타워크레인 붕괴 사고가 났다. 임현동 기자

경기도 의정부시의 아파트 공사장에서 10일 타워크레인 붕괴 사고가 났다. 임현동 기자

수입시 제작 시기 거짓으로 적기도 #하청에 재하청으로 설치하고 해체 #검사 기관은 ‘대충'해야 일감 받아

경기도 의정부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10일 타워크레인이 넘어져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지난 6월 경기도 남양주시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도 크레인이 부러져 노동자 3명이 숨졌다. 지난 5월에는 경남 거제시의 삼성중공업 선박 건조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져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등 올해 들어서만 여섯 차례 타워크레인 사고가 났다.

건설 현장이 고층화ㆍ대형화되면서 타워크레인이 많이 쓰인다. 도심 속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 주변 건물과 보행객도 위험해진다. 2008년 10월 서울 회현동의 한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의 지지대가 땅으로 떨어져 공사장 인근을 지나던 50대 여성이 숨졌다.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인 타워크레인. 넘어지면 근처 건물과 행인을 덮칠 수 있는 상황이다. 송우영 기자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인 타워크레인. 넘어지면 근처 건물과 행인을 덮칠 수 있는 상황이다. 송우영 기자

‘하청에 재하청’으로 운영되는 타워크레인

건설 현장의 타워크레인은 보통 원청인 건설사가 크레인 대여 업체로부터 빌려 작업한다. 전문가들은 영세한 크레인 대여 업체들이 대여료 낮추기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업체들은 크레인을 빌려줄 때 통상 설치와 해체는 이른바 ‘도비팀’이라고 불리는 업체에 재하청을 준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비용 절감을 위한 연쇄적 외주화 속에서 작은 하청 업체들은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노동자들만 죽어 나간다”고 비판했다.

27년 된 타워크레인과 노후 부품들

10일 의정부시에서 철거 도중 넘어진 타워크레인은 제조된 지 27년 된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원인이 노후 부품 등 기기 결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타워크레인은 사용 연한 제한이 없고, 정확한 생산 연도를 알기 힘들다는 점도 안전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다.

10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사고가 난 타워크레인은 제조된 지 27년 된 것으로 조사됐다. 임현동 기자

10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사고가 난 타워크레인은 제조된 지 27년 된 것으로 조사됐다. 임현동 기자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약 6000대의 타워크레인 중 21.3%가 20년 이상 된 것들이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이 수치에 들어있지 않은 노후 타워크레인들도 많다고 주장한다. 전체의 절반 이상이 중국 등에서 들여온 중고 크레인으로 추정되는데, 업체들이 수입한 크레인을 등록할 때 제작 연도가 나와 있는 제작증명서를 제출할 의무가 없어 서류에 제작일자나 수입일을 거짓으로 적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박종국 시민안전감시센터장은 “10년도 넘은 장비가 최근 만들어진 것으로 서류 등록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안전 검사 기관들은 ‘대충’해야 일감 받아

현장 노동자들은 부품 결함 등을 잡아내지 못하는 형식적인 타워크레인 정기 검사 관행도 반복되는 타워크레인 사고의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한다. 타워크레인은 국토부에서 위탁을 받은 기관들로부터 6개월마다 정기 검사를 받게 돼 있다. 해당 기관들은 한국승강기안전공단ㆍKI기술ㆍ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ㆍ대한산업안전협회ㆍ한국안전기술ㆍ한국산업안전 등 6개다. 각 기관의 검사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타워크레인을 검사한 뒤 적합ㆍ권고ㆍ부적합 판정을 내린다.

타워크레인 운전사들은 이 과정에 ‘봐주기식 검사’ 관행이 있다고 주장한다. 검사를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기관이 검사를 까다롭게 하고 부적합 판정을 많이 내리면, 크레인 대여 업체들이 그 기관에게 검사를 맡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전을 위해 깐깐한 검사를 해야 하는 기관들이 오히려 ‘고객’인 크레인 대여 업체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셈이다. 건당 8만~10만원인 적은 검사 비용도 느슨한 검사를 부추기는 이유로 꼽힌다.타워크레인 운전사 이모(41)씨는 “검사원이 크레인에 올라가 보지도 않고 서류만 보고 적합 판정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들 기관 중 검사 후 부적합 판정을 가장 많이 내리는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은 전체 검사 물량의 3% 정도를 맡고 있다. 이 기관 관계자는 “우리가 검사를 까다롭게 하는 게 우리에게 검사를 맡기는 업체들이 적은 이유 중 하나다. 우리가 그동안 부적합 판정을 내린 비율은 28% 정도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검사 기관들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고 있다. 필요하면 경고나 지정 취소 등의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작은 사고 그냥 넘기는 관행이 큰 사고 불러

박두용 한성대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한국산업보건학회장)는 “건설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회사가 산재 처리를 하지 않고 부상자들에게 강요해 공상(치료비를 주고 개별적으로 합의하는 것) 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사고가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넘어가게 돼, 나중에 더 큰 사고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산재 처리 건수를 낮추기 위한 현장 관행이 사고가 일어나게 된 구조적인 원인을 찾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타워크레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22일 3명의 사망자를 낸 남양주의 타워크레인은 사고 발생 수일 전에 부품 고장이 발견됐으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00개 건설업체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184명으로 전년 대비 31명(20.3%) 늘었다. 최근 5년간 평균 환산 재해율(사망 사고에 5배 가중치를 준 수치)은 2012년 0.43%를 기록한 뒤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면서 작년에는 0.57%까지 증가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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