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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수양부모제는 투자 개념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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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미국 인구통계국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에 입양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를 가장 많이 갖다 맡긴 국가는 한국이다. 미국 내 해외 입양아 20만명 가운데 한국 출신은 4만7천여명이었다.

이어 중국 2만1천여명, 3위는 러시아로 1만9천여명, 4위는 멕시코로 1만8천여명 순이다. 또 미국 이민국의 지난 20년간 통계를 보아도 해외 입양아 3명 중 1명이 한국 아동으로 다른 민족보다 10배나 많은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에 아이를 맡긴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뿐이다. 멕시코는 국경을 접하고 있어 미국으로 진입이 비교적 수월해 입양 기회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세계 13위 무역국인 우리나라가 아직도 '유아 수출국 1위'라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1989년 제정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가족이 없는 아동은 문화와 언어가 같은 곳으로 입양 또는 수양(가정위탁 보호조치)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이 비준을 하지 않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사고 있는 국가 간 입양시 아동보호 및 협력에 관한 헤이그 비준안은 해외로 입양될 아동 보호를 위한 안전 장치를 담고 있다.

헤이그 비준안은 해외로 아동을 입양 보내는 나라는 그 아동이 국내에서 수차례 입양 또는 수양을 시도했다는 근거를 제시토록 요구하고 있다. 가족이 전무한 아동은 해외보다는 인종.종교.문화.언어적 배경이 동일한 곳에서 양육돼야만 정상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취지인 것이다.

한국 출신 입양아가 많은 스웨덴 인구통계국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한국 입양아의 사회 부적응은 매우 심각하다. 자살과 마약중독 등이 스웨덴인보다 7.4배나 높다고 한다. 모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입양되는 아동이 새로운 환경에서 원만하게 생활하기는 정말 어렵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헤이그 비준안에 동의해 매년 2천3백~2천4여백명의 어린이가 해외에 입양되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에 적극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헤이그 비준안을 수용하면 해외입양이 원활해지지 않으므로 가족이 없어 버려지는 아이들은 결국 국내에서 입양해야 한다. 그러나 유난히 내 핏줄을 따지는 한국인의 정서와 입양에 대한 부정적 관념 때문에 입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 대안은 수양을 통해 고아를 키우는 수밖에 없다.

수양부모 제도는 세계적으로 그 역사가 1백년이 넘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사람도 피 섞이지 않은 남의 아이 키우는 것을 좋아할 리는 없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을 통해 사회의 기본질서가 될 정도로 수양부모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한국도 국민성을 탓할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와 도리에 대해 교육하고 홍보하여 수양부모 제도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는 크리스 가드너 세계수양부모연맹회장의 조언을 정부 관계자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출산율 최하위권인 한국에서 수양부모 활동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지름길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그처럼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지도자급이나 상류층 사람들이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앞장서 모범을 보인다면 한국은 자기 땅에서 낳은 아이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나라라는 국제 사회의 손가락질을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생산적 아동복지일 것이다.

이달 초 아르헨티나에서 세계수양부모연맹의 제13차 연차대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만난 몇몇 70대 미국인 할머니들은 지난 50년 동안 2백여명씩의 수양아들과 딸을 키웠다고 자랑했다.

한국에서는 6년 전 수양부모협회가 결성된 이후 지금까지 고작 4백50여명의 부모없는 아동을 수양하는 데 그쳤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2007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각국의 수양부모 대표 1천여명이 참가하는 대회가 열린다. 그때는 해외입양이 대폭 줄어들고, 보다 많은 우리의 고아들이 우리 땅에서 자라기를 기대해 본다.

박영숙 사단법인 한국수양부모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