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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북남부 대형산불…트럼프 정부는 온난화 재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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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 캘리포니아가 화마에 휩싸였다. ‘와인의 메카’ 나파밸리 일대에서만 산불로 최소 10명이 사망하고, 한인이 몰려사는 남부의 오렌지카운티에는 대규모 대피령이 내려졌다.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캘리포니아 북부 산타로사 지역. [AP=연합뉴스]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캘리포니아 북부 산타로사 지역.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나파 카운티를 비롯한 캘리포니아주 북부 지역에 동시 다발로 대형산불이 발생해 주민 2만여 명이 대피했고, 건물 1500채가 전소했다.

나파밸리 인근에서 시작한 산불로 최소 10명 사망 #오렌지카운티에도 대형산불. 한인피해 속출 전망 #트럼프 행정부 "탄소와 전쟁 끝났다" 규제 풀기로 #탄소배출량 줄여오던 주정부, 쉽게 따르지 않을듯

8일 밤 나파밸리 인근 칼리스토가에서 시작된 산불은 9일 오후 17개의 산불로 갈라지면서 소노마 카운티에서 7명, 나파 카운티에서 2명, 덴도시노 카운티에서 1명이 숨졌다고 캘리포니아주 삼림ㆍ산불 보호국이 밝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산불이 매우 빠르게 번지고 있다.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는 어떤 수단으로도 통제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노마ㆍ나파ㆍ유바 카운티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건조한 가운데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수백 명의 소방관이 4000∼5000 에이커(16∼20㎢, 490만∼600만 평)에 달하는 산불에 맞서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시속 80㎞의 강풍에 속수무책이다.

북 캘리포니아 지역은 지난 3월 이후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아 매우 건조한 상태였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이번 산불은 자연 발화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 국립기상청은 이날 북 캘리포니아 지역 주요 카운티에 적색 경보를 발령했다. 강풍과 낮은 습도, 따뜻한 기온이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기상청은 밝혔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한밤중에 시작된 산불은 강풍을 타고 30m가 넘는 화마로 돌변해 들판과 고속도로를 뛰어넘어 삽시간에 북 캘리포니아 전역으로 퍼졌다”면서 “주민들은 자동차 열쇠와 애완동물만을 챙겨 차를 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나파밸리 내 실버라도 리조트에 투숙 중이던 크리스 토머스(42)는 ABC 방송 인터뷰에서 “호텔에서 자고 있다가 연기 냄새에 깼다”며 “호텔 측에서 빨리 나가라고 지시해 밖으로 나와보니 먼발치의 불길이 내 앞으로 급속히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물건을 실을 겨를도 없이 아내와 차를 몰아 도망쳤다”고 말했다.

한인 밀집지역인 캘리포니아 남부의 오렌지카운티에도 대형산불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와 오렌지카운티레지스터, KTLA 방송에 따르면 캐년 파이어 2호로 명명된 이번 산불은 9일 오전 91번 프리웨이와 깁섬 캐년 로드에서 발화해 오렌지카운티를 잇는 241번 유료도로 쪽으로 급속히 퍼졌다.

 소방대원 500여 명과 소방헬기, 비행기 수십 대가 불길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북부 캘리포니아와 마찬가지로 식생이 매우 건조한 상태여서 소방헬기가 연신 물을 쏟아부어도 불씨가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시속 70㎞의 강풍이 불고 있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지역에 있는 오렌지 샌티아고 캐년 칼리지, 채프먼 유니버시티, 몇몇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대피시키고 캠퍼스를 폐쇄했다. 주민들이 호흡곤란을 호소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롱비치 해안에서도 하늘이 온통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소방당국은 현재 대피령이 내려진 가구가 1000여 호이지만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인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오렌지카운티 북부 애너하임 지역은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어서 피해가 예상된다.

애너하임 힐스에 사는 주민들은 출근했다가 불이 난 사실을 알고 귀가하려 했으나 불길이 이미 주택가 진입로로 번져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아이들만 데리고 도보로 대피하기도 했다. 주민 에릭 슈미트는 LA타임스에 “아무것도 집어 들지 못한 채 맨몸으로 뛰쳐나왔다. 불길이 바로 뒷마당까지 번지고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캘리포니아 남부 오렌지카운티에 발생한 대형산불로 엄청난 양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캘리포니아 남부 오렌지카운티에 발생한 대형산불로 엄청난 양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오바마 전 대통령의 친환경 어젠더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을 백지화하기로 했다. 미 환경보호청(EPA) 스콧 프루이트 청장은 같은 날 켄터키주의 한 탄광업체에서 연설을 통해 “석탄과의 전쟁은 끝났다”라며 “10일 폐기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발전소의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32% 줄인다는 계획은 시행 2년 만에 백지화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에는 사상 최악의 허리케인으로 해안가 일대에서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고, 이달 들어 캘리포니아가 화마에 휩싸이는 등 미국 전역에 온난화의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는데도 트럼프 행정부가 공약을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지난 6월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를 선언한 이후 후속조치이기도 하다.

오바마 정부의 '청정전력계획'이 폐지될 위기에 처하면서 석탄 관련 산업이 들썩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바마 정부의 '청정전력계획'이 폐지될 위기에 처하면서 석탄 관련 산업이 들썩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광산 개발 규제만 풀어줘도 수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해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마련한 새로운 환경정책 보고서에는 오바마 정부의 청정전력계획을 폐기함으로써 330억 달러(약 38조원)의 재원을 아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바마케어를 대체하기 위한 재원으로 활용된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탄소배출량 가운데 3분의 1이 화력발전소에서 나온다. 사진은 조지아주 줄리엣 소재 화력발전소. [AP=연합뉴스]

미국의 탄소배출량 가운데 3분의 1이 화력발전소에서 나온다. 사진은 조지아주 줄리엣 소재 화력발전소. [AP=연합뉴스]

그러나 석탄을 태우는 화력발전소가 미국내 탄소발생량의 3분의1을 발생시키는 환경오염의 주범인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대로 주 정부들이 따라주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미 뉴욕주와 매사추세츠주는 각자의 주 정부가 정해놓은 스케줄대로 탄소배출량을 줄여나가고 있다.

뉴욕주의 에릭 슈나이더만 검찰총장은 “화력발전이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규제완화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며 “모든 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EPA의 위험한 행동을 막아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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