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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 카드납부 수수료 3000억, 납세자에 떠넘긴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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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세금도 카드로 결제하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신용카드를 통해 납부된 국세 규모는 약 42조원이다.

고객에 수수료 전가 금지돼 있지만 #정부는 뚜렷한 이유 없이 특혜 누려 #카드 납부액 중 법인세가 가장 많아 #재산세 등 지방세 낼 땐 수수료 없어

국세를 카드로 납부하는 제도는 2008년 10월 처음 도입됐다. 신용카드 사용이 대중화된 만큼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금 역시 카드로 결제하는 제도를 만들어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였다. 시작은 미미했다. 국세 카드납부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09년 카드로 납부한 국세는 총 26만8000건, 224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납부 건수의 1.4%, 금액 기준으로는 0.1% 규모에 불과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하지만 국세 카드 납부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꾸준히 늘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65만 건(8452억원)을 시작으로 국세 카드납부 시장이 점차 커지더니 2015년엔 200만 건(18조9022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엔 243만 건(42조4002억원)이 납부됐다.

특히 현금이 부족한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국세 카드납부 제도는 큰 인기를 끌었다. 개인 사업자 입장에선 당장 세금을 납부할 돈이 없어도 신용카드 대금을 결제하기 전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국세 중 신용카드 납부액이 가장 큰 세목은 법인세다. 2015년 국세 납부에 신용카드 한도가 적용되지 않도록 국세기본법이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금액이 큰 법인세까지 카드로 납부하는 법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실제 국세기본법 개정 이전인 2014년까지는 국세 중 부가가치세의 카드 납부액이 가장 많았다.

국세 카드납부 제도의 대중화엔 카드사들의 마케팅도 한몫했다. 계속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등 수입원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연 250조원 규모의 국세는 카드사의 ‘미래 먹거리’였다. 카드사들이 국세 납부에 대한 무이자 할부, 포인트 납부 각종 부가서비스를 출시하며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린 이유다.

국세 카드납부 제도로 개인과 법인 입장에선 국세 납부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고 카드사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는 제도다. 문제는 1% 안팎의 수수료다. 국세를 카드로 내면 ‘신용카드 국세납부 대행 수수료’가 붙는다. 2008년 시행 초기 납세자가 부담한 수수료는 6억원에 불과했지만 카드 납부 규모가 커지며 2013년엔 수수료만 262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엔 약 3000억원 가량으로 불어났다.

많은 납세자들이 의문을 품는 점은 신용카드로 자동차세나 취·등록세, 재산세 등 지방세를 납부할 경우엔 수수료가 붙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방세든 국세든 납세자 입장에선 같은 ‘세금’인데 세목에 따라 수수료 적용 여부가 달라지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현금으로 납부할 경우엔 붙지 않는 국세 수수료가 카드로 납부할 때만 붙는 것은 여신전문금융업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카드 결제에 대한 차별’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지방세와 국세 간 이같은 수수료 차이는 ‘신용공여’가 적용되는지 여부에 기인한다. 지방세에 수수료가 붙지 않는 것은 신용공여 제도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신용공여란 지자체가 신용카드사와 계약을 해 1주일에서 1개월까지 일정 기간 동안 자금을 카드사가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카드사가 납부 대행에 따른 비용을 충당하는 제도다. 카드사는 납세자들이 카드 결제일에 낸 돈을 최장 40일간 카드론이나 현금 서비스 재원으로 활용해 수익을 내 납세의무자의 납부 대행 수수료 부담을 없앤다.

박명재 의원은 “가맹점은 수수료를 고객에게 전가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국세 납부 때 가맹점과 같은 위치인 정부는 합당한 이유 없이 우대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궁극적으로 국세에도 신용공여 계약을 적용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수수료를 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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