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숱한 핵 실험, 미·중 분쟁…탐욕의 바다, 태평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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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태평양 이야기 표지

태평양 이야기 표지

태평양 이야기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김한슬기 옮김, 21세기북스

한반도 688배 면적 광활한 대양 #수소폭탄 실험에 비키니섬 폐허로 #핏빛으로 물든 갈등의 현장 넘어 #번영의 미래 열 세상의 중심 되길

면적이 1억6525만㎢에 이르는 대자연. 태평양에 대한 묘사다. 7억5000만 년 전 지구 상에 존재하던 유일한 대륙이던 판타랏사가 분열하면서 생성된 바다다. 한반도의 688배에 이르는 광활한 넓이다. 북극권의 캄차카 반도에서 남미대륙 최남단 마젤란 해협의 혼 곶까지, 태평양의 종단 항해 거리나 파나마에서 필리핀 팔라완까지 횡단 항해 거리는 1만6000㎞나 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지은이는 ‘광활함’을 넘어선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자연사, 전쟁과 분쟁의 역사를 비롯한 태평양의 참의미를 종횡으로 살핀다.

태평양에는 작은 섬들이 꽃잎처럼 떠 있다. 인류는 이 아름다운 바다와 섬에 경의를 표하는 대신 피를 흘리는 각축장으로 만들었다. 식민지 각축전부터 태평양 전쟁을 넘어 핵실험과 미·중 분쟁의 현장이 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태평양은 인류에게 충격을 준 바다가 됐다. 태평양 한복판 마셜군도의 비키니 섬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스페인-독일-일본에 이은 네 번째 주인을 맞았다. 미국이다. 이 섬에서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 167명은 1946년 1월 미국에서 날아온 손님을 맞았다. 자신을 와이엇 중장이라고 밝힌 이 손님은 기독교도인 주민들에게 구약성서 출애굽기 13장을 인용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밖으로 인도할 당시 홍해가 갈라지기 직전의 긴장된 상황을 다룬 내용이다. 졸지에 태평양의 이스라엘 민족이 된 주민들은 이로부터 한 달이 안 돼 간단한 소지품만 들고 ‘지상낙원’을 떠나야 했다. 이 섬은 46~58년 미국의 핵실험 장소로 사용됐다. 미국이 45년부터 터뜨린 1032개의 핵폭탄 중 초창기 67개는 태평양 상에서 폭발했다. 비키니 섬에서만 23회의 폭발이 있었다. 섬의 이름은 이곳에서 첫 핵실험이 이뤄진 해에 등장한 ‘아찔한 수영복’에도 붙었다. 세상에 충격을 주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1946년 7월 태평양 비키니 섬의 핵 실험 당시 폭발 장면. [사진 위키피디아]

1946년 7월 태평양 비키니 섬의 핵 실험 당시 폭발 장면. [사진 위키피디아]

비키니 섬에서 수소폭탄 실험이 이루지면서 160km 떨어진 롱겔라프 섬의 주민 236명은 방사능에 오염됐다. 선원 23명이 탑승했던 일본 참치잡이 어선도 같은 운명을 겪었다. 백인이 아니었던 이들의 오염사실은 구렁이 담 넘듯이 넘어갔다. 68년 미국의 린던 존슨 대통령은 강제 이주 주민들에게 귀환을 허용했지만 비키니 섬은 토양과 바닷물이 방사능에 오염돼 누구도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있었다. 태평양의 핵 비극이다.

이 바다의 패권을 놓고 태평양전쟁에서 맞붙었던 미국과 일본은 이제 동맹국이 됐다. 일본은 1955년 소니가 개발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시작으로 가전, 자동차 등 상품으로 미국을 장악했다. 핏빛으로 물들었던 태평양은 돈이 생기는 교역로가 됐다. 하지만 같은 교역 대상인 중국은 미국의 잠재적 적국이다. 미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의심과 경계심, 공포와 불안에 가득한 눈으로 중국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거의 강박적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태평양의 서쪽은 여전히 불안하다. 특히 북한은 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불안 요인의 핵심이자 중심으로 떠올랐다.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하고 2009년 4월 5일 일본 머리 뒤로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올린 이후 도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도 조용히 있지 않았다. 2001년 4월 1일에는 하이난다오(海南島) 인근 상공에서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가 충돌했다. 중국은 일본과도 갈등을 벌이고 있다. 2013년 1월 23일에는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열도(尖閣列島, 중국명 다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영토 분쟁을 재점화했다.

지은이는 지구가 가진 가장 광활한 바다인 태평양을 인류가 지혜롭게 이용하는 길을 찾으면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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