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식 기자회견엔 일문일답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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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대학생체육협회대표단의 성명이 있겠습니다."

북한 임연택 기자단장은 지난 24.26일 대구 유니버시아드 미디어센터에서 전극만 총단장의 기자회견에 앞서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후 전 총단장은 준비한 성명서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두세 쪽의 성명서를 다 읽고 난 뒤 오른손을 들고 "감사합니다"만 외치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순간 질문을 준비했던 기자들이 당황해 전 총단장을 따라가면서 질문공세를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심지어 전 총단장에게 다소 거친 말투지만 "경기에 참가할 거요.말거요"라고 따져 물어도 눈 깜짝하지 않고 걸어나갔다.

북한의 이런 식의 기자회견에 낯설은 국내외 기자들의 불만이 사방에서 쏟아졌다."성명만 읽을려면 성명서만 나눠 주면 되지 왜 기자들을 불렀느냐","예의가 없다" 등 항의의 목소리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전 총단장은 성명서를 읽기 전에 미디어센터 3층 통신실에 들러 평양과 충분한 사전조율을 했다.글자 하나 하나까지 까다롭게 '검증'을 받았다.따라서 성명 내용에 없는 말은 한 마디도 말할 수 없다.북한 대표단에서 전 총단장은 '조정자'가 아니라 '대표자'의 역할만 맡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전 총단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한 마디라도 하게 되면 당장 그를 감시하는 북한 안내원들로부터 "왜 성명에 없는 내용을 말했냐"며 '경고'를 받게 된다.

평양에 돌아가서도 TV로 지켜본 고위층으로부터도 '문책'을 받는다.심한 경우에는 직위가 해제될 수 도 있다.이런 사정을 잘 아는 전 총단장은 성명에 적힌 내용 외에는 입을 굳게 다물은 것이다.

TV아사히 우에야마 치고씨는 "북한의 체제를 염두에 두면 이해할 수 있지만 유니버시아드 등 국제행사에 참가했으면 국제적 기준에 맞춰 몇 개의 질문을 받고 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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