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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들 리베이트 챙기는 수단으로 악용된 의회 재량사업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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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이미지. [중앙포토]

뇌물 이미지. [중앙포토]

전북도의장을 지낸 최진호 전북도의원은 2013년 1월과 지난해 7월 두 차례에 걸쳐 브로커 김모씨에게서 정치자금 1500만원을 받았다. 또 재량사업비 일부를 의료용 온열기 설치 사업에 편성해 준 대가로 500만원을 챙겼다. 재량사업비란 지자체가 광역·기초의원 몫으로 일정 금액을 배정해 의원들이 재량껏 쓸 수 있도록 하는 예산이다.

전주지검, 재량사업비 비리 수사 발표 #전·현직 지방의원 7명 포함 21명 기소 #주민숙원사업비로 불리는 재량사업비 #'생색내기용' '리베이트 창구'로 악용 #"비리 없애려면 예산 자체 폐지해야"

최 의원처럼 주민들을 위해 써야 할 재량사업비를 업자와 브로커로부터 뒷돈을 받는 '리베이트 창구'로 악용해 온 전북 지역 지방의원들이 무더기로 검찰의 철퇴를 맞았다.
하지만 수사 대상에 오른 전북도와 전주시 외에도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는 여전히 '지방의원 쌈짓돈'으로 불리는 재량사업비를 편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의원과 브로커·업자 간 부패 커넥션을 끊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재량사업비 편성 자체를 금지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주지검은 28일 "일명 '재량사업비'로 추진되는 공사를 특정 업체들에 몰아주고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최진호·정진세 전북도의원과 고미희·송정훈 전주시의원 등 지방의원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해 12월부터 10개월간 이뤄진 검찰의 재량사업비 비리 수사를 통해 기소된 사람은 앞서 재판에 넘겨진 전직 도의원 강영수·노석만씨 등 전·현직 전북도의원 4명과 브로커 역할을 한 주재민 전 전주시의장 등 전·현직 전주시의원 3명, 전 인터넷매체 전북본부장 김모씨 등 브로커와 업자 14명까지 모두 21명으로 늘어났다. 검찰은 이들 외에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한 정호영 도의원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그동안 재량사업비는 '주민숙원사업비' 등 지자체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의원들이 임의로 쓸 수 있어 '쌈짓돈'이란 지적을 받아 왔다. 주민 숙원을 예산에 반영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의원들의 생색내기용이나 리베이트 창구로 악용돼 '부패의 온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의원 38명이 활동 중인 전북도의회의 올해 재량사업비는 총 190억원으로 1인당 5억5000만원 수준이다. 시·군의원도 평균 1억원 안팎의 재량사업비를 쓰고 있다.

뇌물 이미지. [중앙포토]

뇌물 이미지. [중앙포토]

이번에 최 의원과 함께 기소된 정진세 도의원은 2015년 8월과 지난해 6월 재량사업비 예산을 편성해주고 온열기 설치업자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고미희 전주시의원은 2015년 8월부터 10월까지 재량사업비 예산을 태양광 가로등 설치사업에 편성해 준 대가로 두 차례에 걸쳐 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송정훈 전주시의원도 지난해 8월 같은 사업에 예산을 주고 350만원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검찰은 2015년 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재량사업비로 진행되는 전주시내 학교 6곳의 방송·체육시설 공사를 특정 업체들에 맡긴 뒤 브로커로부터 26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강영수 전 도의원을 지난해 12월 구속 기소했다. 강 전 도의원은 이 사건으로 의원직을 사퇴했고,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5200만원, 추징금 2600만원을 선고받았다.

현재 수감 상태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노석만 전 도의원은 2012년 9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재량사업비로 전주시내 아파트 8곳에 체육시설 설치사업 예산 등을 편성해 준 뒤 업체 대표로부터 1540만원을 챙긴 혐의로 지난 6월 구속 기소됐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 벌금 3080만원을 선고받고 1540만원을 추징당했다.

검찰 로고. [중앙포토]

검찰 로고. [중앙포토]

브로커 김씨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도의원들을 상대로 재량사업비 예산으로 납품을 청탁해 예산을 확보한 뒤 업자들로부터 2억5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기소됐다. 그는 최진호·정진세 도의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도 받고 있다.

김명수 전주지검 형사3부 부장검사는 "이번 수사로 국가 예산이 지방의원들의 선심성 또는 대가성 사업에 사용되고 이 과정에서 지방의원·브로커·사업체 사이에 부정하게 금품이 오가는 구조적 비리가 드러났다"며 "수사 과정에서 전북도와 전주시가 재량사업비 예산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만큼 지자체가 예산을 투명하게 편성·집행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북도의회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사과문을 내고 "이번 불미스러운 사태를 지방의회의 도덕성을 회복하고 투명성을 바로 세우는 자정의 기회로 삼겠다"며 "사건의 발단이 된 주민숙원사업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창엽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지방의원들이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선심을 쓰고 리베이트를 챙기는 악습을 근절하려면 비정상적으로 편성돼 온 재량사업비를 모든 지자체가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고위 관계자는 "리베이트 문제와는 별도로 예산 편성 기준을 어긴 것으로 밝혀지면 향후 교부금을 삭감하게 된다"며 "위반 사항이 있다면 감사를 통해 밝혀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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