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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취업해도 불안한 ‘싱글맘’ …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12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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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43세 여성 J씨는 10여 년 전 이혼하고 딸(18)과 살고 있다. 전남편이 월 30만원의 양육비를 주기로 해놓고 연락이 두절됐다. J씨는 희귀병을 앓는 딸의 치료비는 물론이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힘들었다.

이혼·사별한 여성 취업률 50% 넘어 #정규직은 6%뿐, 대부분 고용 불안 #“육아휴직 보장, 근로조건 개선해야”

어렵게 요양병원 비정규직 직원으로 취업해 월 90만원을 벌게 됐다. 하지만 딸의 치료비를 대기도 버거웠다. 남편을 사칭한 사기단에 보이스피싱을 당하기도 했다. 정부의 도움을 받아 올 들어 남편한테서 월 100만원의 양육비를 받고 있지만 병원비·생활비에 짓눌려 있다. 양육비도 2021년에 중단된다.

배우자와 이혼·별거·사별한 여성의 절반이 노동시장에 뛰어들지만 10명 중 약 7명이 J씨처럼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는다. 이 때문에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정규직 취업에 성공하는 경우는 1명도 안 된다.

주재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2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서 이런 내용의 ‘비취업 여성의 근로형태 이행과 결정요인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7~2016년 여성가족패널조사에 참여한 20~54세 여성 1만654명을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여성은 결혼 생활에 변화를 겪으면서 취업 형태가 크게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별거·사별한 뒤 노동시장으로 뛰어드는 비율이 절반 이상(53.8%)에 달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은 기혼 여성(15.7%)의 3배가 넘는다. 혼자가 되면서 생계 유지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별거·사별 여성은 어렵게 취업하더라도 일자리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졌다. 취업자의 68.6%가 비정규직이다. 5.8%만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 정규직 일자리를 얻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두 살 터울의 두 딸이 있는 최모(40·여)씨가 그런 경우다. 최씨는 약 10년 전 이혼했다. 이혼 후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국가 지원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이혼의 충격, 생활고 등으로 인해 알코올중독에 빠졌고 우울증이 찾아왔다.

5년 전 정부의 자활사업에 참여하면서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지역 주민센터에서 5시간 청소를 했다. 이후 조리학원 수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기술을 익혀 구청 일자리 지원센터를 통해 취업 알선을 받았다. 2015년 한 회사 정규직 취업에 성공했고 180만원의 월급을 받게 되면서 기초수급자에서 탈출했다.

주재선 연구위원은 “남성은 원래부터 직장을 다니는 경우가 많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들어갈 데라곤 사실상 비정규직밖에 없다”면서 “이혼·별거·사별 후엔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여성이 새로 취업해도 임금이 낮고 처우가 좋지 않기 때문에 빈곤층 전락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혼자가 된 기혼 여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일이 흔하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한 부모 가족 실태조사(2015년)에 따르면 어머니와 자녀로 구성된 ‘모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7만5000원으로 204만2000원인 ‘부자가구(아버지+자녀)’보다 27.8% 낮았다. 이는 전체 가구 평균 소득(390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 연금제도연구실장이 올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별 가구의 41%가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했다. 사별 가구의 82.6%가 여성이다.

이 실장은 “소득 하위 70%인 65세 미만 사별 배우자에겐 기초연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매달 연금을 지급하는 노인처럼 사별 가구에도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주 연구위원은 “여성 근로자는 남성보다 전반적인 임금 수준이 떨어지는 데다 비정규직도 많은 편”이라면서 “장기적으로는 육아휴직 보장 등 근로 조건 개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도 뿌리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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