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독감 기승 전망…계란 대신 세포 배양으로 변종독감에 신속 대응

중앙일보

입력

‘소리 없는 전쟁터.’

경북 안동의 SK케미칼 백신공장 가보니 #올해 독감백신 출하량 2480만 도즈로 사상 최대치 #

경북 안동의 SK케미칼 백신공장 ‘L하우스’ 생산 현장 분위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직원들은 마스크·두건·장갑·방호복으로 온몸을 감쌌다. 만에 하나 백신에 세균이 들어가면 재앙이기 때문이다. 공장 내 모든 설비가 무균 상태 유지와 오염 가능성 차단에 초점을 뒀다.

 침묵 속에 두 손만 바삐 움직였다. 이들이 만드는 것은 독감백신. 이대현 L하우스 운영지원팀장은 “하루에 약 15만 도즈(1회 접종분)의 독감백신 ‘스카이셀플루’를 생산한다”며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2교대로 쉴 틈 없이 막바지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독감백신 예방 접종은 9~12월 사이에 집중된다.

경북 안동의 SK케미칼 백신공장에서 한 직원이 2000리터짜리 대형세포 배양기를점검하고 있다. [사진 SK케미칼]

경북 안동의 SK케미칼 백신공장에서 한 직원이 2000리터짜리 대형세포 배양기를점검하고 있다. [사진 SK케미칼]

올해 계획된 L하우스의 독감백신 출하량은 600만 도즈로 지난해(500만 도즈 공급)보다 20%가 늘었다. 차질 없이 수급을 맞추려면 정밀하면서도 빠르게 작업해야 한다. 공장 전체가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됐던 이유다. 이 공장의 백신 출하량이 늘어난 것은 올 겨울 사상 최대 규모의 독감 유행이 우려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약사들로부터 계획서를 받아 집계한 올해 독감백신 출하량은 2480만 도즈로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2280만 도즈)보다도 11.7% 증가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초·중·고교생 독감 의심 외래환자 수는 1000명당 153명으로 사상 최대치였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독감백신 예방 접종률은 19%에 그쳤다. 지역별로 백신을 부족하게 준비했던 병·의원이 속출해 접종률이 낮았다는 분석이 나왔다.지난해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제약사나 각 병·의원들이 철저히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적정량의 백신을 미리 확보하지 못한 보건 당국이 다국적 제약사들에 백신 공급을 호소하는 어려운 상황을 겪어야 했다”며 “백신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경우 이번에도 국가적 재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올 겨울엔 위험성이 큰 변종독감이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보건 당국은 아시아권에서 유행한 변종독감에 긴장했다. 외신에 따르면 홍콩에서 올 5월부터 유행한 변종독감에 최근까지 2만 명 이상이 감염돼 사망자도 수백명이나 됐다. 지난 2년간 제작된 백신이 잘 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가까운 중국 본토까지 긴장시켰다.

이홍균 L하우스 공장장은 “독감백신의 제조 기간을 단축시켜 변종독감에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며 “대응할 시간을 그만큼 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통상 독감백신을 만드는 데는 5~6개월이 소요되지만, 이보다 훨씬 단축된 2~3개월 만에도 백신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졌다.
기존 ‘유정란(계란) 배양 방식’ 대신 ‘세포 배양 방식’을 도입해 활용 중인 덕분이다. 1930년대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독감백신 제조법에선 닭을 길러 확보한 계란의 흰자에서 독감 바이러스를 대량 배양했다. 안전성은 검증됐지만 제조 기간이 5~6개월로 비교적 길어 변종독감이나 조류독감 같은 변수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백신공장 안에서 연구원이 독감백신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SK케미칼]

백신공장 안에서 연구원이 독감백신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SK케미칼]

반면에 계란 대신 세포 배양기 안에서 바이러스를 증식시키는 방식을 쓰면 2~3개월에 백신을 만들 수 있다. 올해 같은 ‘살충제 계란’ 파동에도 타격 없이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가능해진다. L하우스는 2000L짜리 세계 최대 배양기를 쓰면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2013년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이런 세포 배양 방식으로 독감백신을 처음 선보였다. 이후 수년간 안전성 검증 절차가 진행돼 지금은 관련 업계가 주목하는 제조법으로 떠올랐다.
 안동=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