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민노총 사무실 압수수색 영장 파장] '우군서 적으로' 勞政 충돌 위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부와 노동계가 대립 각을 세우는가.

그동안 '친(親)노동 정책'을 편다는 평가를 받았던 정부가 이번 물류대란에서는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협상에 개입할 뜻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쓸 수 있는 압박카드는 다 쓰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물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정면 돌파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이에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등 노정(勞政)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방침을 정하자 노동계는 이를 민간 독재로 가는 징후라고 주장했다.

사실 정부의 이번 대응은 지난 5월 화물연대의 집단운송 거부 당시와는 영 딴판이다.

당시 정부는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정도로 대화를 통한 해결에 무게를 뒀다.

그리곤 '백기투항'이란 비난까지 감수하며 화물연대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노정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잇따라 강수를 두었다. 5월의 경우 구조적인 문제를 들고 나왔지만 이번엔 운송업체와 화물연대가 풀어야 할 운임료 문제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방침은 화물연대 사태에 대한 대응 수위를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정부로선 밀월 관계를 유지해 온 민주노총에 한 방을 먹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이번 물류대란을 계기로 노동계와의 선긋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줄곧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던 정부가 이처럼 궤도를 수정한 것은 무엇보다 '경제살리기'가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계 투자기관과 해외 언론들은 현 정부 출범 후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한국의 노사갈등을 경고했다. 노사문제가 경제회복의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란 게 이들의 지적이었다. 국내 여론도 제 몫 찾기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노조에 부정적이었다.

박영범 한성대 경상학부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계속 노동자 편을 든다는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노동계와 대화를 하고, 법과 원칙을 무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학습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처음엔 노동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책을 폈지만 그 정책이 현장에선 역효과를 내고 있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의 이런 입장 변화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는 분위기다. 손낙구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어떤 행동을 하면 그 뒤에 계산이 있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정부의 계산이 무엇인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하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사태는 화물연대에 대응하면 되는데 왜 민주노총까지 연결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정부의 초강수에 맞서 총력투쟁으로 맞불을 놓을 태세다.

민주노총은 26일 성명을 통해 "노무현 정부가 출범 6개월 만에 노동계와 정면 대결로 가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기찬 기자<wol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