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여름엔 시베리아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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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호 31면

외국인의 눈

한국인이 생각하는 ‘한여름 밤의 꿈’은 어떤 것일까? 찌는 듯한 무더운 날씨를 감안하면 시원한 밤에 대한 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울에서 여름을 보낼 때마다 “어디 시원한 데로 떠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매일 백 번 이상 들었던 것 같다.

한국의 뜨거운 날씨를 확실히 이겨 내려면 시베리아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농담으로 했더니 친구가 정말 그러고 싶다고 신중하게 답했다. 나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금치 못했다. 러시아인들은 여름을 보내기 위해서 언제나 뜨거운 바다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시베리아에서 여름을 보낸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이유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에 와서 정말 시베리아로 가고 싶은 한국사람이 많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미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이번 여름에 바이칼 호수를 여행하고 상쾌한 머리와 기쁜 마음으로 서울에 돌아왔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시베리아가 시원한 날씨 때문에만 한국사람을 끌어당기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많은 한국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세 가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시베리아는 한국사람에게 ‘새로 발견된 땅(terra incognito)’일 수 있다. 웬만한 데는 다 다녀 봐서 시베리아는 특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도 그다지 멀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시베리아는 또 한국인에게 ‘신비의 땅(terra mystica)’이다. 한국 민족의 조상들은 시베리아 주변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2주가량 시베리아 여행하다 온 친구가 “시베리아에 사는 민족들이 한국인과 많이 닮아서 친근감을 느낀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인에게 시베리아는 또 ‘낭만의 땅(terra romantica)’일 수 있다. 무엇보다 거대한 공간이 낭만적인 인상을 준다. 게다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산도 있고,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용함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내년 여름은 시베리아에서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시원한 여름을 보내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역사적 기원까지 탐색해 볼 수 있다면 일석삼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나 코르군
한국외국어대 러시아 연구소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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