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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너희가 兵營을 아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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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적(私的)인 얘기를 글머리로 삼아보자. 며칠 전 아들이 병무청에서 실시하는 신체검사를 받았다. 자정이 넘어 들어와 자고 있는 그를 가볍게 흔들어 깨우면서 "뭐 받았어?"라고 물었다.

"2급 현역이래요." "기분이 어때?" "어차피 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 그렇게 한국의 남자가 되는 거란다"라는 내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아들은 이불자락을 배 위로 당기며 돌아누웠다.

불현듯 1980년 한여름의 장면 하나가 낡은 기억의 창고에서 빠져나왔다. 소위 '개구리복'(제대 때 입는 얼룩무늬 예비군복)을 입고 강원도 양구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는 내 모습이었다.

그 때 나는 딱 한 가지를 소원했다. "저는 이렇게 허망하게 젊은 날을 보내고 갑니다. 하지만 우리들 아들 세대에는 이런 불행이 거듭되지 않게 해주시길…."

개수 맞추기와 시간 때우기-. 70년대 말 군 복무 당시, 강원도 춘천의 군견대 근무 친구와 만나 나누던 우스개는 이랬다. "비싼 셰퍼드를 팔아먹고 싸구려 잡종견을 사다놔도 문제가 없는 곳이 군이다." 그러면서 모든 병사들이 구타나 힘든 기합(얼차려)을 당하면서 내뱉던 푸념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이후 '달라진 신세대 병영' 운운하던 최근까지도 사건.사고와 자살 소식이 이어졌다. 고참(선임병)의 구타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는 TV에 나와 "그러니 남들은 돈 쓰고 '빽' 써서 군인 안 보내지. 보낸 내가 죄인이야"라며 통곡했다.

몇 년 전 인기소설 제목을 따서 유행하던 풍자는 더 자학적이다. 현역 입영자는 스스로 '어둠의 자식'이라 부르며 '사람의 아들', '장군의 아들'(방위병), '신의 아들'(면제)을 부러워했다.

이 와중, 얼마 전 육군이 '사고예방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무려 35쪽이나 되는 문건을 읽어내려가다 보니 이런 구절도 있었다. "병영 저변에 구타 및 가혹행위가 잡초처럼 잔존…." "일과시간 후 병사에 의해 병영통제가 이뤄지고 있는데 따른 부조리…" 육군의 인식 수준이 달라진 까닭인지 그럴 듯한 처방도 눈에 많이 띄었다.

하지만 여전히 겉도는 대목 하나-.

" '쫄따구'' 신삥' 등 저속어나 '빡세다''개목걸이' 등 비어를 금한다." 물론 의미있는 조치지만 병사들이 못 견뎌하는 것은 그런 언어폭력이 아니다. 침상에 머리 열을 맞춰 자는 것과 악을 쓰는 관등성명 복창도 참을 만하다.

게다가 졸병(후임병)이 도맡는 내무반 청소 등 허드렛일도 그리 힘겹지 않다. 고참과 졸병이 지녀야 할 미덕마저 부정하진 않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일과 중'과 '일과 후' 구분없이 계속되는 불필요한 긴장감이다. 일과 중 '빡센' 전투훈련에 불평을 제기하는 병사는 없다. 하지만 일과 후 내무반에서 제 몫의 할 일을 다한 이등병이 취침 때까지 차렷자세로 침상 끝에 로봇처럼 앉아 있는 것은 뭔가. 왜 내무반에서는 졸병 때 당하면서 생활한 고참의 졸병에 대한 복수극이 펼쳐지고 있는가.

한마디로 창군 이래 계속되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다. 이는 내무반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으로 끊을 수 있다. 누가 '내무반의 풍속도가 코미디 소재에서 사라지지 않는 게 비극'이라고 했던가. 어느 한 고참 세대가 손해볼 각오를 하면 문제는 당장 해결된다. 반복적 교육과 처벌로 기적을 낳을 수 있을 터이다.

사족 하나 달면서 글을 맺자. 위반자에 대한 구속수사 엄포보다는 이등병으로 강등시켜 3개월 단위로 군 복무를 연장하는 벌칙을 세우면 어떨까. 병사들은 감옥보다 병영을 더 지겨워하니 말이다.

허의도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