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페달 밟는 선진국 … 한국은 발도 못 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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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13일(현지시간) “프랑스 국민이 국가를 개조하고 행동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국민은 프랑스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뮈리엘 페니코 노동부 장관도 같은 날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리와 장관이 같은 날 잇따라 방송에 출연해 이처럼 강한 어조로 말하는 국정 메시지는 노동개혁이다. 12일 노동개혁에 반대해 총파업에 들어간 노조에 정면돌파를 선언한 셈이다.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개혁 작업이 멈춰 있는 동안 선진국은 노동개혁 2라운드에 돌입했다.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시장의 변화에 대응해 국가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진행 중이다.

마크롱, 집권하자마자 개혁 시작 #단체협상 독점하는 노조 권한 제한 #정규직 과보호 풀어 경제 회생 노려 #독일, 2015년부터 ‘노동 4.0’ 착수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안 연구 #스페인은 해고자 금전 보상 확대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노동개혁에 착수했다. 그가 집권하기 전 단행된 엘콤리법 등의 후속 개혁조치다. 2015년 말 발효된 엘콤리법에 따라 프랑스 기업은 기업 규모에 따라 일정 분기 동안 연속해서 매출이나 순익이 떨어지면 해고할 수 있다. 마크롱 정부는 이에 더해 노조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과 같은 내용의 노동개혁안을 내놨다. 경직된 노동규제와 정규직 과보호가 경제활력을 떨어뜨린다는 판단에서다.

마크롱 정부는 50인 이하 중소기업은 노조가 아닌 근로자 대표와 근로조건 협상이 가능하도록 했다. 20인 이하 사업장은 개별 근로자와도 협상할 수 있다.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노조가 협상력을 독점해 모든 사업장에 임금과 단체협상 결과를 적용하고 있는 데 대한 제어장치다. 공무원 수를 1만2000명 감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또 법정 근로시간(주 35시간)을 근로자와 협의해 연장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기업이 부담하는 고용세와 법인세 인하 방안도 내놨다. 페니코 장관은 “새 노동법이 시행되면 9.5%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2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은 12일 총파업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제1노조인 민주노동총동맹(CFDT)과 제3노조인 노동자의 힘(FO)은 참여하지 않았다. 국민 절반 이상이 노동개혁에 찬성하고 있다. 마크롱 정부는 다음달 새 노동법을 발효할 예정이다.

독일은 2015년부터 ‘노동4.0’이란 이름의 개혁조치에 착수했다. 하르츠개혁으로 경제를 일으킨 독일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추가 개혁에 들어간 것이다. 로봇사용 확대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 대응하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디지털 시장에 대한 근로자의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시스템 개혁에 나섰다. 핵심인재 유치를 위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경쟁력 있는 임금체계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유연한 근로시간 운용을 강화하는 방안과 휴식시간 보장, 근로자의 심리적 질병을 보호하는 조치도 내놨다. 지멘스 등 일부 기업은 이런 내용의 개혁 조치를 노사 합의로 이미 적용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이 법은 2000년 개정했다. 불과 17년 만에 현 시장상황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근로시간을 확대하거나 유연하게 운용하도록 하고, 저임금 노동자는 보호하고 정규직의 혜택은 묶어두는 내용이다. 2013년 파견·기간제 근로자 고용기간을 5년으로 늘리는 것과 같은 개혁조치를 단행한 일본도 후속 개혁에 착수했다. 외국인재 유치방안을 강구하고, 시간외 근무는 월 최대 100시간으로 제한하는 것과 같은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한다. 대신 텔레워크(원격근무, 재택근무 등)와 같은 유연근무를 확대할 방침이다. 도요타자동차는 재택근무체계를 전면 도입해 시행 중이다. 이외에도 2012년 노동개혁을 단행한 스페인은 해고자 금전보상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제2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해 노사정이 협상을 하는 등 선진 각국이 2라운드 노동개혁을 하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의 2차 노동개혁은 유연성이 불안정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보호가 경직성으로 기울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런 작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의 실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노동개혁에 착수조차 못했다. 적기를 놓치면 정책효과의 약발이 떨어지고, 결국엔 국가의 경쟁력이 약화된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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