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 독립 선언, 중국 공화국 선포 … 나라 생일기준 다 달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진영에 갇힌 건국 논쟁 ② 건국은 시점이 아니라 과정

“생일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

다른 나라들의 건국 기념일은 #식민지 지낸 베트남·인도네시아 #해방일보다 주체적 선언 더 중시 #“한국, 개천절·광복절 이미 있어 #건국절 추가 도입 땐 의미 중복”

보수단체들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해야 한다”며 주장한 논리다. 중앙일보 취재팀이 전 세계적으로 국가의 탄생을 기념하는 나라를 조사했다. 오히려 현 체제의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지정해 기리는 나라는 드물었다.

미국은 독립선언을 한 1776년 7월 4일을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로 정했다. 실제 정부 수립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취임한 1789년 4월 30일이었다. 그사이 독립전쟁(1783), 제헌의회와 헌법 제정(1787) 등이 있었다. 일련의 과정보다 시발점에 방점을 둔 것이다. 도널드 커크 전 뉴욕타임스 한국특파원은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역사는 매우 짧아 독립기념일을 능가하는 다른 기념일은 없지만 현충일(Memorial Day·5월 마지막 월요일) 등 다른 기념일도 중요하다. 역사가 길었다면 한국의 개천절처럼 초창기의 건국일을 지켰을 것이다”고 전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베트남도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호찌민이 독립을 선언한 1945년 9월 2일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했다. 실제 독립전쟁은 1954년 7월 21일에야 끝났다. 인도네시아도 네덜란드와의 독립전쟁 후 독립을 인정받은 1949년 12월 27일이 아니라 수카르노가 독립을 선언한 1945년 8월 17일이 독립기념일이다. 송승원(말레이-인도네시아어)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독립이 이뤄진 날보다 자기들이 주체적인 의지로 선언한 날을 독립기념일로 삼아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관련기사

멕시코 역시 가톨릭 성직자 이달고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3개월간의 전투를 시작한 1810년 9월 16일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했다. 브랜든 팔머 미국 코스털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식민지 시절을 겪은 곳은 애국심이 발로한 시점처럼 독립을 이루는 데 상징성이 큰 날짜를 기념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혁명 등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날은 건국절처럼 기리는 나라도 많다.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의 발단이 된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바스티유 데이’로 기념한다. 스페인은 1987년 법령으로 10월 12일을 ‘국가의 날’로 지정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날이다. 호주는 1788년 영국 함대가 시드니에 처음 도착한 날(1월 26일)을 ‘호주의 날(Australia Day)’로 정했다. 대만은 중국 역사상 첫 공화제 국가인 중화민국의 탄생을 불러온 1911년 10월 10일 우창봉기(武昌起義)를 기념해 쌍십절(雙十節)을 정했다. 이 봉기는 청의 멸망으로 이어진 신해혁명의 발단이 됐다.

현 체제의 정부수립일을 기념일로 정한 나라도 있다. 중국·인도·터키 등이다. 중국은 1931년 11월 7일 장시(江西)성 루이진(瑞金)에서 수립한 중화소비에트공화국 대신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1949년 10월 1일을 ‘국경절(國慶節)’로 삼았다. 인도 역시 220여 년간 영국 지배를 벗어난 1947년 8월 15일이 아닌 인도민주공화국으로 선언한 1950년 1월 26일을 ‘공화국의 날’로 기념한다. 터키는 의회가 공화국을 선언한 1923년 10월 29일을 ‘공화국의 날’로 지정했다.

이와 달리 일본의 경우 우리의 개천절에 해당하는 2월 12일이 ‘건국 기념의 날’이다. 초대 일왕의 즉위 시기라고 주장한다. 영국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별로 자체 수호성인 축일을 즐긴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을 때 이미 개천절과 광복절 등 건국과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날을 만들었다. 각자 의미가 있는 건데 굳이 중복되는 건국절을 또 만들자는 건 천박한 주장”이라고 했다.

특별취재팀=강홍준·고정애·문병주·윤석만·안효성·최규진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