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원 내고 운 좋으면 130만원 이득” 온라인 게임 아이템 뽑기 ‘도박 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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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 유명 BJ가 시청자들이 입금한 돈으로 게임 내뽑기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한 유명 BJ가 시청자들이 입금한 돈으로 게임 내뽑기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4만원에 (게임 내 뽑기를) 한 번 돌려주고 (희귀 아이템이 나오면) 130만원 드리는 거니 솔직히 여러분 진짜 이득이죠. 자, 다음 차례 갑니다.”

BJ들 ‘리니지M’서 사행성 부추겨 #“모바일 게임도 결제 한도 규제를”

지난 5일 유명 BJ(1인 방송인)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모바일·PC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M’을 소재로 방송을 진행한다. 그중에서도 게임 안의 ‘아이템 뽑기’를 다룬다. 생방송 중에 시청자들이 BJ의 개인 계좌로 입금하면 입금한 돈만큼 뽑기를 대신해준다. 희귀한 게임 아이템이 뽑히면 BJ가 미리 정한 액수의 현금을 준다. 이 BJ는 “운이 좋으면 130만원을 받을 수 있으니 여러분 입장에서 이득”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낮은데도 시청자들의 입금이 이어졌다. 한 번에 100만원을 입금하기도 했다. “진행자 형, 여섯 번째 입금하는 거니 잘 좀 해줘”라고 채팅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방송에서 희귀한 아이템이 나와 보상받은 사람은 없었다.

리니지M은 유명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모바일 버전으로 지난 6월 출시됐다. 대표적인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Massive Multi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의 하나로 이용자들은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희귀 아이템으로 캐릭터를 강하게 키우면 다른 이용자와의 대결에서 유리하다.

많은 MMORPG가 수익성을 높이려고 이른바 ‘현질(현금을 내고 아이템 등을 사는 것)’을 통해 캐릭터를 키우도록 유도한다. 리니지M의 경우 게임 내 거래소에 무슨 아이템이 나올지 알 수 없는 ‘확률형 뽑기 시스템’이 있다. 복권처럼 “운이 좋으면 나도 될 수 있다”며 아이템 뽑기에 몰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를 이용한 ‘도박성’ 방송이 등장한 것이다.

뽑기 한 번에 현금 3만원 정도가 들지만 희귀 아이템 ‘당첨’ 확률은 낮다. 엔씨소프트가 공개한 확률표를 보면 ‘해신의 삼지창’이 나올 확률은 1.5363%다. ‘데스나이트의 불검’은 0.0001%여서 100만 번을 뽑아야 하나가 나오는 확률이다. 산술적으로 약 800만 번을 해야 당첨되는 로또 1등에 비견될 정도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사행성 논란을 막기 위해 아이템이 나올 확률을 모두 공개하고 뽑기의 과정과 결과를 이용자들이 사전에 알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희귀 아이템에 대한 공감대를 활용한 도박성 방송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이날 방송을 시청한 김모(40)씨는 “나는 재미로 가끔 한두 번 하는 정도인데 인생을 다 건 ‘뽑기 폐인’도 많다. 채팅방에서 ‘3시간 만에 5000만원을 날렸는데 멈출 수가 없다. 아내가 알면 이혼 각(이혼 위기)이다. 죽고 싶다’는 글도 봤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 돈을 건 한 이용자는 “마지막으로 일하러 갈 차비까지 다 걸었으니 잘해 달라”고 글을 올렸다. 유튜브에는 수천만원어치의 뽑기를 했다는 사람들의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른 인기 게임들도 현금 결제를 지나치게 유도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축구 게임인 ‘피파온라인’은 현금으로 능력치가 좋은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고, ‘메이플스토리’나 ‘모두의마블’ 등 인기 게임에도 현금으로만 살 수 있는 각종 아이템이 있다.

일각에선 결제 한도가 1인당 월 50만원으로 정해진 온라인 PC 게임처럼 모바일 게임에도 현금 결제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리니지M을 악용하는 1인 방송자들은 막아야 한다. 우리도 피해자다. 다만 온라인 게임에 월 결제 한도를 두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밖에 없어 그것이 맞는 방향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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