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아베의 전화외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지난 9월 4일 자정을 넘긴 시각. 관저를 나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기자들 앞에 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하루 새 두 번째 전화통화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오전 전화통화 때와 달리 굉장히 상기된 얼굴이었다. 엔도르핀이라도 나오는 건지 한밤중인데도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잦은 전화통화로 ‘내가 트럼프랑 가장 친하다’는 게 입증됐다는 뿌듯함이라도 느낀 걸까.

아베 총리가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국면에서 각국 정상들과 전화 외교를 펼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대개는 지지율 회복을 노리고 보여준 퍼포먼스의 일환이라는 시각이다. “너무 많이 했다. 다음엔 얼마나 더 많이 할 건가” 하는 비아냥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전화를 나누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뜨거운 관심사다.

외교가에서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군사옵션은 절대 안 된다”고 말렸을 것이라는 얘기가 꽤 현실성 있게 돈다. 미국이 선제타격이라도 하면 북한은 곧바로 반격할 테고, 미군기지가 있는 한국은 물론 일본도 그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이 일본을 공격하면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일단 ‘대기’를 걸어놨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이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는 미국이 일본에 알리지 않고 군사옵션을 결행하는 경우다. 전시작전권을 미국과 공동으로 가진 한국과 달리 일본은 미국이 알려주지 않으면 갑자기 북한에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고도 요격체제를 갖출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 달라는 게 지금 심정이다.

실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날아갔으니 북한 미사일에 대한 공포는 현실이다. TV에선 해상자위대 장성 출신이 나와 “설사 북한이 쏜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한다고 해도 핵 미사일이라면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겠느냐”는 주제로 토론할 정도다.

한 외무성 출입기자는 정말 궁금한 건 문재인 정부의 속내라고 내게 묻는다. 그는 "한국 정부가 겉으로는 북한을 함께 비난하고 제재 강화에 찬성하고 있지만 정말 그런 건지, 또 언제 북한과 대화를 터보려고 할지 모른다는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핵실험 이튿날 한국의 여당 대표가 “북한과 미국에 동시에 특사를 보내자”고 했으니 100% 근거없는 의심이라 할 순 없다.

일본은 새로 부임하는 주일 대사가 두 정부 간의 긴밀한 메신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다만 “북한과 대화를 중시하는 학자 출신이다 보니 한·일 관계보단 북한의 입장을 더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어쩌면 아베 총리가 더 자주 전화외교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